(기로에선 동반성장)②대한민국 동반성장의 '3적(敵)'

입력 : 2012-06-08 오후 2:05:36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적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동반성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막강한 권력집단의 포위에 갇혀 시들어가고 있다.
 
지난 2010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동반성장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애당초 구조적 개혁에 대한 의지는 없었다. 따라서 자칫하면 재계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동반성장은 언제나 통제 가능한 사정거리 내에 둬야만 했다.
 
이는 동반성장위원회가 구조적으로 지식경제부 산하에 존재하는 민간단체라는 현실을 통해 드러난다. 동반위는 지식경제부로부터 매년 50억원 남짓한 예산을 ‘할당‘ 받아 연명하는 민간단체로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만약 동반위가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을 경우 재계의 이해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저격수’ 역할을 수행한다. 전경련은 동반위의 동선을 유심히 지켜보며 재계의 이익에 해를 가할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포탄을 날리거나 위기감을 조성한다.
 
이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1년 6개월을 통해 명증하게 관찰된 일이며, 또 이명박식 동반성장론의 본질이기도 하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안정팀장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대기업 편중 구조의 국가경제 개혁을 가로 막는 동반성장의 장애물이 역설적이게도 이를 주도하는 세력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동반성장’을 대기업 우대정책의 바람막이 삼다
 
이명박 대통령은 애당초 동반성장의 한계를 기업과 시장의 자율로 규정했다. 불합리한 대중소기업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법제화에 대해서는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정운찬 위원장은 "장차관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행동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가끔 동반성장을 말하지만 결연한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입으로는 상생과 동반성장을 외쳤지만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시종일관 대기업 편향적이었다.
 
고환율 정책과 부자감세가 가장 단적인 예다. 높은 환율 덕분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수출 대기업들은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했고 막대한 환차익을 거뒀다. 반면 서민들은 고환율로 인한 물가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부자 감세’도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과는 상극에 위치하는 정책이었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온기효과, 낙수효과 등을 통해 중산층·서민들에게까지 혜택이 퍼질 것이라는 논리였지만 오히려 빈부격차만 확대됐고, 대중소기업간 양극화도 심화됐다.
 
일각에서 MB정권의 국정 기조에 대해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 한다"는 냉소적 반응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중성 때문이다.
 
한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원가절감 노력이 필수적이다. 대기업으로서는 가격경쟁력 제고를 위해 일단은 최대한으로 납품단가를 깎으려 하는 강력한 유인을 갖고 있는 것이다.
 
◇홍석우, 중기청장 출신의 동반성장 '바람잡이’
 
성과공유제가 등장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눈엣가시였던 이익공유제보다 어감이 좋고 대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는데다 일반 여론이 느끼기에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 쉽게 말해 '바람 잡기'에 더없이 좋다.
 
정부측 바람잡이로 나선 건 중기청장 출신의 홍석우 장관이었다. 정운찬 위원장 사퇴 이후 정책 추진 주체의 공백을 빌미로 ‘성과공유제 장관’을 자처한 홍 장관은 취임초기부터 "기업들이 대기업 때리기의 빌미를 개선하기 위해 성과공유제를 수용해야 할 것"이라며 산업계와 스킨십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성과공유제가 이익공유제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중소기업 관련 연구기관, 학계 등에서 성과공유제 관련 연구를 수행해온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입장에게 성과공유제는 오히려 탄압의 기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 동반성장정책실 관계자는 “원가 내역을 대기업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원재료의 원가를 공개해야하는데 당연히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며 “법제화해도 안되고, 법제화가 된다고 해도 오히려 중소기업을 더욱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시장에서 거두어들이는 이익에 대해 중소기업이 기여한 부분을 계약서상 보장하게끔 규정하는 제도인데 반해 성과공유제는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내역을 직접 대기업에게 인증 받아야 하는 제도다.
 
인증 과정에서 원재료 가격을 모두 공개해야하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된다. 설령 납품단가 인하에 성공해 매출액에 기여한 부분이 있더라도 대기업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서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합의’라는 ‘뒷문’ 또한 존재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성과공유제가 오히려 대기업 입장에서 협력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보다 합법적인 차원에서 지속할 수 있는 폭력성을 내재한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말빨’에 ‘권력’까지 겸비한 저격수
 
다소 급진적이었다는 비판이 상존하긴 했지만 정운찬 전 위원장만큼 관련 이슈에 열의를 보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정 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도, 지경부도 아닌 '전경련'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다.
 
전경련은 1년 6개월 동안 동반위에 대해 '슈퍼갑'의 권리를 행사해 왔다. 올초 초과이익공유제와 관련된 동반위 본회의 참석을 '보이콧' 했으며, 심지어 참석을 원하는 일부 기업에게도 압력을 행사해 불참을 강요하는 등 동반위를 사면초가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1월부터 활발히 논의되던 이익공유제로 인해 제반 상황이 불리해진 전경련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민감한 단어를 섞어 위기론을 조장해왔다.
 
지난해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 듣도 보도 못했다"며 이례적으로 초강경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할 거짓말이었다. 이익공유제는 롤스로이스가 항공기 엔진을 개발할 때 표준사업 모델로 자리 잡은, 이미 널리 알려진 모델이며, 이와 유사한 순이익공유제의 경우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건설업계 전반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제도다.
 
동반위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도 소수에 불과하긴 하지만 업계에서도 협력이익배분제나 초과이익공유제 등 모범적인 동반성장 모델을 시행하는 기업이 있지만, 전경련에서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해도 한다고 말을 못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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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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