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사실상 '파행' 상태인 연료비연동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산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1일부로 시행 예정이었던 연료비연동제는 물가상승을 우려한 관련부처의 반대로 보류된 상태다.
연료비연동제란 석탄과 LNG(액화천연가스) 등 수입원료의 3개월간 평균 수입가격 변화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빈번한 요금 변동을 줄이기 위해 ±3% 이내의 연료비 변동은 반영하지 않고 상한선은 50%이내로 제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료비연동제를 시행할 경우 국제연료가격 변동에 따른 발전연료비 증감분을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고 다음달 변동요금을 소비자에게 예고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이를 통해 합리적 전기 소비가 가능해지며, 정부 입장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은 당초 연료비연동제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한전은 사이버지점 홈페이지를 통해 연료비연동제의 의미와 조정단가, 전망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놓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지경부도 역시 지난 2008년 KDI에 용역을 의뢰하고 도입을 추진해왔다.
◇'한전사이버지점' 홈페이지에 나온 연료비연동제 설명.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전기요금이 유가의 등락에 따라 조정된다.
한전에 따르면 전기요금의 산정기준이 되는 총괄원가에서 발전비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중에서도 화석연료비가 전체 원가의 약 47%(2009년 기준)를 차지한다. 지금의 전기요금 제도는 이러한 연료비의 가격변동폭을 전혀 반영치 못하고 있고, 이는 만성적자의 주요 원인으로까지 꼽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제도적 보완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관련부처간 조정의 어려움을 들어 전기료 인상만을 고집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물가상승 우려의 실질적 주범이 공공재 인상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높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한데 이어 5월 들어 또 다시 산업전기를 중심으로 인상 의지를 표명했다. 불과 5~6개월만에 전기료 3% 인상안이 정책결정 테이블에 올려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연료비연동제를 당초 계획대로 시행했다면 인상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연료비연동제를 시행하지 않고 인상요인을 남긴다면 전기요금이 올라가는 유가를 항상 뒤쫓아가는 꼴이 될 것"이라면서 "한전 입장에서도 연료를 사오는 마당에 가격이 올라가면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지금이라도 연료비연동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연료비연동제가 전기료 인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기요금을) 한번에 올려서 초래되는 충격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좋은 제도를 만들어놓고 물가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보류했다"면서 "결국 지금 한꺼번에 올리는 상황을 초래해 오히려 더 큰 갈등과 비용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지경부와 한전 측은 제도 시행에 관해 이렇다 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제도가 시행되면 한달에 10% 이상이 오를 수도 있어 원가회수율을 높이는 등 전기요금을 현실화한 후 상황을 봐서 시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구체적 시기에 관해서도 "지금 답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서 말을 아꼈다.
당초 연료비연동제 도입을 추진했던 입장과는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전기료 인상이 결정된 마당에 굳이 부처간 오해를 살 행동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정책결정자의 소극적 행동도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씁쓸해했다.
대안을 마련해놓고도 시름하는 모습. 정책결정이 지연되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