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법률시장①)봉인풀린 외국로펌, 한국 공략 본격화

"미·유럽 침체속 활로 찾기"..'토종로펌' 비상

입력 : 2012-07-20 오전 8:51:32
[뉴스토마토 권순욱·최기철기자] '내우외환(內憂外患)'. 한국 법률시장이 사상 최대의 격동기를 맞았다. 외부로부터는 막대한 인력과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중무장한 외국로펌이 속속 상륙하고 있다. 연내 25~30개 외국로펌이 국내에 사무소를 열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토종 로펌들을 위협하고 있다. 안으로는 사법연수생과 로스쿨생 등 신규 법조인력이 넘쳐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법연수원 출신들은 배출인원은 줄고 있지만 기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는 예도 생기는 등 위상이 떨어졌다. 한해 1500명씩 쏟아지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연수를 받기도 힘든 상황이다. 변호사 자격을 따는 동시에 '무직자'로 전락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모두 6회에 걸쳐 한국 법률시장을 긴급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본다. (편집자)
 
외국 대형로펌들이 다음 달 중 문을 열고 한국로펌들과의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선봉에는 한국 사회 유력인사들의 친인척이 포진하고 있다.(2012년 7월19일자 외국로펌, 국내진출 '선봉'에 유력인사 인척 대거 포진 기사 참조)
 
지난 16일 오전 법무부로부터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설립 인가를 받은 '클리포드 챈스(Clifford Chance)'와 '롭스 앤 그레이(Ropes & Gray)', '쉐퍼드 멀린(Sheppard Mullin)' 등 외국 로펌 3곳은 같은 날 곧바로 대한변협에 외국법자문사 법률사무소 등록을 신청했다.
 
◇외국로펌 3곳 이번주 중 변협등록 완료
 
이들은 이번주 중 변협 등록이 완료되는 즉시 국내에서 외국법자문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들 외국로펌은 현재 8월 중 개소를 목표로 막바지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영국 로펌인 클리포드 챈스는 브라이언 캐시디(Brian Cassidy) 스코틀랜드 변호사를 한국사무소 대표로 지정해 개소를 준비 중이다.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에 사무실을 정했으며 김현석 미국변호사가 팀장으로 있는 홍콩사무소 한국팀에서 한국인 변호사 10여명이 파견될 예정이다. 캐시디 변호사는 지금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한국 사무소 개소에 만전을 다하고 있다.
 
미국 로펌인 롭스앤그레이는 김용균 미국변호사가 한국 사무소 대표로 나서 활동 중이다. 법무법인(유) 화우가 외국법자문사 법률사무소 등록절차를 대리했다. 현재 서울 대치동 포스코 사옥에 둥지를 틀고 8월 개소를 기다리고 있다. 상주 인원은 김 변호사를 포함해 2명으로 내년에 한국계 미국변호사 3~4명이 추가로 합류할 예정이다.
 
쉐퍼드 멀린은 한국 사무소 대표인 김병수 미국변호사가 등록 신청부터 사무소 개소 준비까지 발로 뛰며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중구 센터원 빌딩에 사무실을 뒀으며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8월 중 공사를 마치는 대로 개소하고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업무시작 초기에는 김 변호사를 포함해 5명이 투입되지만 내년 초까지 한국계 미국변호사들을 더 충원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16일 오전 과천 청사에서 '클리포드 챈스', '롭스 앤 그레이', '쉐퍼드 멀린' 등 외국 로펌 3곳에 대해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설립증 교부식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쉐퍼드 멀린' 김병수 미국변호사, '클리포드 챈스'브라이언 캐시 변호사, '롭스 앤 그레이' 김용균 변호사가 설립인가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제공;법무부)
 
◇14개 대형 영미로펌 심사 진행 중
 
선발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로펌 외에 법무부에는 지금 14개의 외국 대형로펌이 심사를 진행 중이다.
 
케이앤엘 게이츠(K&L Gates) 등 미국 로펌 12곳, 디엘에이 파이퍼(DLA piper) 등 영국 로펌 2곳이 심사를 받고 있다. 미국로펌은 롭스앤그레이와 쉐퍼드 멀린을 포함한 7개 로펌이 정식 심사를 통과했다. 영국로펌은 2곳이 예비심사를 진행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외국법자문사 법률사무소 승인 신청을 한 외국로펌은 변협 등록을 기다리고 있는 외국로펌 3개를 포함해 총 17개로 예상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로펌 등 업계에서는 아직 심사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외국 본진에서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로펌까지 예상하면 금년 내 25~30개 로펌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 개방 초기에 30개에 가까운 외국로펌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예는 흔하지 않다. 특히 미국 로펌의 경우엔 지난 3월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지 넉달만에 14개 로펌이 들이닥쳤다.
 
외국 로펌들이 한국 법률시장으로 빠른 속도로 진출하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법무부 국제법무과 이기영 검사는 "전 세계 로펌들이 아시아 지역 업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현재 추세"라며 "국제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경제 비중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법률시장 진출은 아시아 전략구도 완성"
 
그는 또 "일본과 중국은 이미 개방된 만큼 우리나라 진출이 아시아 시장의 전략구도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한국 사무소를 내는 쉐퍼드 멀린의 김병수 변호사는 "유럽이나 북미쪽 보다 아시아쪽 경제가 많이 일어나는 추세고, 특히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아 아웃바운드 수요가 많다"고 한국 법률시장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은 법률시장이 침체된 상황이어서 해외시장 개척이 필요했는데 한국 법률시장이 딱 걸린 것"이라며 "세계 지도를 펴놓고 봤을 때 외국 로펌이 의미있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 바로 한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국만 하더라도 각종 규제 때문에 마음껏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며 "외국 로펌에게 한국은 수출중심국가로 해외 여러나라와 법률분쟁도 많고, 그 규모도 커지고 있어서 군침이 도는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외국로펌들이 '한국 법률시장'이라는 파이를 얼마나 차지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최근 몰려 온 영미로펌의 경우 수천명에 달하는 변호사 규모와 국제적인 네트워크 및 국제분쟁 해결에 대한 노하우로 중무장되어 있다. 때문에 당장은 한국 토종로펌들이 고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국 토종로펌들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에서다.
 
◇"한 도시에 변호사 200명 집중된 로펌 드물어"
 
최상위권의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외국 로펌이 보유하고 있는 변호사 숫자가 수천명이라지만 그것은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변호사를 합한 수"라며 "우리나라 처럼 한 도시에 200~300여명의 변호사가 집중되어 있는 로펌은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경우 한국변호사를 포함해 외국변호사까지 합하면 총 500명 규모다. 이른바 빅6로 불리우는 상위권 로펌도 한국변호사만 160~200명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 로펌 변호사도 "국제중재를 비롯해 한국변호사들의 국제적 위상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고, 사건을 맡겨오는 외국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국제적인 네트워크 면에서도 열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석은 우리보다 앞서 법률시장을 개방한 외국의 예에서도 적지 않은 타당성이 확인되고 있다.
 
독일은 1998년 법률시장 개방 초기 '초토화' 됐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영미로펌에게 잠식당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헨켈러 뮐러'와 '글라이스 루츠'를 비롯해 독일 토종로펌이 '톱 10' 중 절반을 차지하며 '자생'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본 '톱10' 중 영미로펌 단 한곳
 
1987년 처음 법률시장을 개발한 일본의 경우도 '슬라우터 & 메이', '브라운 & 플랫' 등을 앞세운 대형 영미로펌이 초반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 일본 법률시장의 '톱 10'안에 드는 외국로펌은 ‘베이커 앤 매킨지(Baker & Mckenzie)’ 한 곳 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일본로펌에 대한 기업과 국민의 충성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 영미로펌 진출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본국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기업들 성향도 한몫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반면 이에 대해서는 일본로펌이나 변호사들의 국제화와 성장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부작용을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우리나라 대형로펌의 경우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서 외국 로펌에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어느 정도 타격은 불가피하고, 도미노 효과처럼 중하위 로펌에게도 영향을 미쳐 국내 법률시장이 소용돌리에 휘말려 들어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일본은 다소 국수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외국 로펌이 강세를 보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는 외국 로펌에 대해 신기루 같은 환상을 갖고 있다"며 "법률수요자들이 과연 국내로펌과 외국로펌을 객관적인 능력을 평가할 것인지 의문시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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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