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키코(KIKO)' 계약으로 기업이 입은 손해에 대해 은행이 70%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추가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파생상품인 키코 소송과 관련해 10~30% 안팎의 일부 승소는 있었지만, 60∼70% 수준의 사실상 승소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화랑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차장은 23일 "오늘 판결 소식을 들은 기업으로부터 지금이라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의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며 "소송으로 구제받기 위해서는 3년으로 정해진 소멸시효 기간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최승록)는 이날 엠텍비젼등 4개 기업이 부당한 키코 상품 거래로 피해를 입었다며 시티은행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기업이 과거 키코 거래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래경험만으로 기업이 손해를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은행은 키코 가입으로 인한 손해 가능성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을 했어야 한다"며 은행 측의 책임을 인정해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거래경험이 은행 측 설명의무의 경감사유가 될수 없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엠텍비젼, 테크윙, 온지구, 에이디엠이십일 등이 은행권으로부터 배상받게 될 금액은 무려 90억원에 이른다.
재판부는 이어 "은행 측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기업에게 제대로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는데도 '키코 사태'와 같은 위험이 발생해 많은 이익을 취득했고, 결과적으로 기업은 많은 손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과실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은행이 기업에게 배상해야할 금액은 각 기업의 손실액의 60~70%로 정함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키코 사건을 심리했던 재판부는 대체로 "기업이 키코계약을 체결한 것은 계약의 내용과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향후 환율 전망에 대해 스스로 예측한 바에 따른 기업의 선택이므로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왔다.
이 때문에 당초 피해기업들 210개사가 은행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소송을 냈으나 판결이 난 195개사 중 10~50%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37개사 외에는 대부분 패소했다.
이와 관련해 키코 피해기업 공동위 관계자는 "최근 금융·증권 범죄에 중형이 선고되면서 금융피해자에 대한 재조명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 점도 은행권의 책임을 높이는데 영향을 준 것 같다"며 "재판중인 상급심 재판부 또한 '키코 장사'로 배불린 거대 금융권력(키코판매은행)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있게 단죄해줄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판결이 나온 직후 은행권은 잔뜩 긴장한 분위기다. 인지대 등 재판비용을 감안해 피해금액의 일부만 청구했던 기업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소송가액을 추가해 소송을 낼 경우 배상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이다.
키코 상품은 환율이 약정한 일정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그러나 환율이 약정범위를 넘어 급등하게 되면 기업이 비싼 값에 달러를 사서 은행에 싸게 팔아야 해 기업이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다음달부터 20여개 기업의 '키코상품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며, 대법원에는 관련 소송이 15건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