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키코는 41년간 피땀 흘려 가꾼 회사를 앗아갔다. 타이어설비 업체 동화산기 전 대표 박용관씨(68)는 매출액이 한때 420억에 이르렀던 회사를 키코로 인해 놓아버려야 했다.
자식 같던 회사를 남의 손에 넘겨버린 박씨는 이제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박씨는 키코 사태에 대해 "단순히 은행과 중소기업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며 울분을 토했다.
10일 오전 박씨를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해외로 여행까지 보내주며 키코 가입시켜
-키코로 입은 손해 때문에 회사를 뺐겼다고 들었다.
▲2009년에 완전히 그만뒀다. 주거래은행이 주도적으로 매각을 진행했다. 동화산기는 현재 다른 회사에 팔린 상태다.
-동화산기는 어떤 회사였나?
▲금호 타이어에 타이어 설비를 납품하는 회사였다.
-주거래은행에서 키코를 판매한 과정을 알고싶다.
▲당시 주거래은행은 우리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다보니까 은행장이 은행 신년인사에 불러 예우도 했다. 당시 행장이 "기업이 외로울 때 도와주는 것이 은행이 할 일이다"라는 연설을 했는데, 감동을 받았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기업해외연수라는 명목으로 우수기업 경영자들을 부부동반으로 해외에 보내주기도 했다.
-은행이 접대를 하면서 키코를 판매했다는 뜻인가?
▲나뿐만 아니라 은행 전국 지점에 우수고객을 선정해서 연수를 보내줬다. 당시 연수에서 한시간 동안 교육을 시켜줬다. "환헤지 제품이 환율에 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상품이다"면서 여러 가지 접대를 해줬다. 당시 부행장이 인솔을 해줘서 더 신뢰가 됐었다. 골프도 치고 노래방도 같이 갔다.
2007년도 10월쯤에 광주까지 부장급이 과장 둘을 데리고 와서 "키코상품이 환율에 대비할 수 있는 최상의 좋은 제품이다"는 말을 했고, 결국 인간적인 정이 있어 사인을 했다. 2008년 봄에 환율이 올라가니 그 분들이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와서 손실을 입혀 죄송하다면서 계약을 수정하면 괜찮아진다고 신경써주기도 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서 말 해달라.
▲은행이 추천을 해주니까 사인을 해준 것이다. 환율대책에서 최상의 상품이라는 말을 믿었다. 손실이나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다고 했었다.
-수수료 얘기도 있었나?
▲은행도 당연히 마진을 볼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따로 말하지 않았다.
-직접 서명했나? 계약기간은 어땠나?
▲직접 서명 했다. 그동안 거래처 은행이었으니까 믿음이 있었다. 계약기간에 대해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07년 처음 키코 상품을 소개받아 서명하고, 2008년 환율이 오르면서 다시 서명을 했다.
◇키코 피해 입자 표정 싹 바꾼 은행
-어떻게 회사를 매각하게 됐나?
▲2008년에 금호타이어가 현 정권한테 압박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230억원정도 수주를 받았는데 돈을 받지 못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기업회생'을 신청했는데 은행이 바로 훼방을 놨다.
-훼방을 놨다고?
▲우리 회사가 200억을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은행이 알고 있어서 부도 처리가 되면 은행이 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은행이 협력업체들에게 채권을 보증하겠다며 회유를 했다. 은행에서 50% 채권을 보장한다고 하니 협력업체들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회장이 회사돈을 횡령했다는 내용이었다. 후에 협력업체들은 은행이 들려준 내용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고 탄원서를 철회했다.
법원이야 금융권하고 다 밀착된 상황 아닌가. 은행 추천자 1명과 대표인 나 2인체제로 공동관리인 인가가 나왔다. 한 지붕에 두 명의 관리인이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관리인에서 해임되자 은행이 매각절차를 밟았다.
-키코 관련 민사소송에는 참여했나?
▲은행 관리인들 맘대로 회사경영을 해버리니까. 그래서 참여 못했다.
-키코 사태 후 직원들을 해고했나?
▲내가 있을 때는 회사가 어렵긴 했어도 우리는 계속 자동차 수가 증가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람들을 해고하진 않았다. 사람들을 더 쓰면 썼지 내보내지는 않으려고 했다.
-회사가 넘어가면서 회사 사정은 어떻게 변했나?
▲현재 수주가 없다고 들었다. 직원들도 많이 나가게 하고 그랬다더라. 나는 못 먹어도 직원들은 잘 먹어야 한다는 심정이었는데 이렇게 됐다.
-기업을 넘길 때 심정은?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간도 나빠지고 심장도 나빠졌다.
-은행 직원들과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했는데?
▲바로 변심하더라. 사람들이 저 사람은 옆에서 반역할 수 있다고 일에서 빼버려야 한다고 그랬는데도 데리고 다녔었다. 그 사람이 바로 변심을 했다. 배신감을 많이 느꼈다.
◇거리로 나선 사장님
-항의 집회에 많이 나갔을 것 같다.
▲초기에는 잘 몰랐었다. 공대위가 생겨 참여하게 되면서 금감원 등에서 집회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업인들이다 보니까 과감하게 시위를 못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격렬하게 하더라. 우린 점잖게 했다.
-아무래도 사장님들이다보니 집회 같은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 같다.
▲키코에 손해를 입었어도 어느 정도 회사를 유지시켰던 사장,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있으면 금감원 가서 자폭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나도 똑같은 맘이다.
금융가들이 돈을 모아서 입법부를 장악해버리고 자기들 맘대로 법조항을 만들어버린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그 벽에 부딪치면 이길 수가 없다.
우리 공대위도 그래서 '김앤장'을 쓰려고 했는데 은행은 몇십억씩 주고 우리는 조금밖에 주지 못하는데 우리를 도와주겠나? 교수들 중에서도 은행 지원하는 교수는 많았는데 우리 입장에 선 교수는 없었다. 은행은 보고서 하나 쓰는데 교수들에게 2000만원을 줬다고 한다.
-요즘도 집회 자주 나가나?
▲'월가를 점령하라'를 모방한 '여의도를 점령하라' 시위에 매주 목요일 나가고 있다. 거기서 한 번이라도 악을 써야 좀 마음이 풀린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키코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회에 눈을 뜬 사장님들이 많은 것 같다.
▲과거에는 보수적이었다. 진보 신문 같은 것 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보수 신문은 이 문제를 다루지도 않는다. 사회 모든 것이 다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입법, 사법, 행정에 언론도 다 엮여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기대하고 있는 것은?
▲키코 상품이 사기상품이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기 때문에 다음 정권은 이 문제를 원상복귀시키고 피해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들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
◇"키코 문제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이명박 물러나라고 외치고 다니고 있다.(웃음)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 아닌가?
▲예전 대선 때는 광주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어야 한다고 운동했었다. 그때는 이명박 후보가 서민하고 중소기업 살린다고 그랬었다. 중소기업 망한 것은 다 이명박 대통령 작품이다. 망한 기업은 다 수출우량기업이다.
-키코 때문에 삶이 180도 바뀌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원만할리 있겠나. 우리 아들은 나랑 말도 안하고 집 사람은 원망만 한다. 아들은 회사에 들어와서 경영 하고 싶은 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회사를 놓아버렸으니까….
-재기 계획은 세우고 있나?
▲이제 힘들다. 자금 조달이 힘들다.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정책적으로 주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나름 사장님이었고, 하나의 기업을 운영했는데 이제 모든 것을 잃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 현재 심정은?
▲가해자가 금융권이니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에 대해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맘이 있다. 이 은행이 법원의 수납창구다. 법원 수납창구를 바꾸라고 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우리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공정하지 못하고, 평등하지 못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로운 나라에 가면 더 기회가 많으니까 이민 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동감한다.
지금 사회정의가 없어지지 않았나. 강자들을 계속 자기 마음대로 하고, 약자들은 웅크리고. 이게 국가인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외국에서 피해보상 사례가 있는데도 법원에서는 전부 부정을 하고 검찰에서는 은행이 사기죄가 없다고 하고 있다. 새 정권은 원상회복을 하고 손해배상을 해주면 고맙겠다.
제조업자에게는 제조물 피해법이 있어서 내가 만들고 판 상품이 팔아서 하자가 있으면 배상을 하게 되어있다. 금융도 마찬가지로 금융서비스로 고객이 손실을 입으면 배상의 책임을 가져가야 한다. 키코는 설명의무 조차 제대로 안지켰다. 어떤 미친 사람이 3~4배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상품에 가입을 했겠나.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는 다 금융권 손아귀서 놀아나고 있다. 말로만 지원한다고 한다. 키코는 사회 전체적인 문제다. 시스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