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웅진홀딩스(016880)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으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부도 위기에 놓인 기업이 회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일부 대주주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회생절차 신청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웅진그룹 사태' 역시 경영권을 유지하고 채무를 감면하기 위해 도피수단으로 법정관리를 선택했다는 의혹을 키우며, 금융당국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데 한 몫 했다.
이 때문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6일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웅진홀딩스 대표이사로 나섰다가 5일 법정관리 심문기일이 열리는 전날 "오해가 생겼다"며 사임했다.
◇하자있는 대표의 '권리권 유지' 논란
지난 2006년 도입된 통합도산법에 따르면 법원은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관리위원회와 채권자협의회의 의견을 들어 1인 또는 여럿의 관리인을 선임해야 한다. 법원은 채무자의 대표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토록 하고 있다.
웅진그룹 사태의 경우, 법정관리 신청 전날 웅진홀딩스가 계열사에 빌린 530억원을 조기에 상환하는 등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이에 채권단 측은 윤 회장의 관리인 선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해왔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채무자의 이사나 지배인이 재산을 유용하거나 은닉, 중대한 책임이 있는 부실 경영을 했을 때 관리인으로 선임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정관리'의 문제점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법정관리는 기존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앉히는 '관리인 유지(DIP·Debtor in Possession)' 제도를 도입하고 '채권자 평등 원칙'을 적용해 모든 상거래 채권을 동결하는 등 기업의 편의를 지나치게 봐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회사인 극동건설과 함께 웅진홀딩스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당일 윤 회장이 대표에 취임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기업회생 절차 중에도 경영권을 갖기 위한 모럴헤저드에 빠진 경영진의 '꼼수'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이 때문이다.
법정관리 제도의 당초 도입 취지를 벗어나 악용되는 사례도 빈발했다.
지난 7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환기업은 최용권 전 회장 측근인 허종 사장이 관리인을 맡고 있다. 허 사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지만 경영권 유지에 성공했다. 풍림산업 역시 총수인 이필웅 회장의 아들 이윤형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맡고 있다.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성원건설은 임휘문 사장이 법정관리인을 계속 맡고 있다. 올해 6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벽산건설의 김남용 대표도 전임 부사장 출신이다.
실패한 대주주 및 경영진이 자리를 보전하고 채권단과의 자율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보다 부실을 털어낼 수 있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2006년 통합도산법이 시행된 뒤 5년 동안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된 기업 142개 가운데 120개(84.5%)에서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법 제정 이후 법정관리 신청은 2007년 116개, 2008년 366개, 2009년 669개, 2010년 630개 등으로 급증했다.
◇금융당국 "기업 구조조정 제도 손질"
웅진홀딩스·극동건설 채권단은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 대표에서 사임했지만 윤 회장이 대표에서 물러나도 웅진그룹 회장의 지위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단은 "제3의 인물이 관리인으로 선임돼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의 지분 73.92%를 보유한 1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채권단은 웅진 측 인사가 관리인으로 선임되는 것은 윤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고 보고 있다. 즉, 웅진과는 무관한 '제3의 관리인'을 선임해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기업구조조정의 전반적인 개선작업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는 법정관리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과 통합도산법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법정관리제도의 문제점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통합도산법은 법정관리가 개시될 때 채권·채무를 동결하고, 중대한 위법 사실이 없는 경우 기존 경영진이 회사 관리인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회사 사정을 잘 알아야 경영정상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영실패에 책임있는 기존 경영진이 채무 경감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법정관리를 악용하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전날 간부회의에서 "통합도산법은 채권 금융회사의 견제장치를 강화하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해야 한다"며 제도개선이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법정관리 신청을 까다롭게 하고 법정관리 신청 기업에 대해 채권단이 회계법인과 공동 실사를 하는 방안, '부실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규정하거나 채권단이 공동 관리인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넓히는 내용 등이 논의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금융위는 워크아웃과 관련해선 기업뿐 아니라 채권단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활성화하고 내년 말 사라질 기촉법의 법제화와 법 적용대상 확대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이헌 변호사는 "관리인유지제도는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관리인을 맡긴다는 점 등 장점이 있기도 했지만, 그에 따른 문제점도 제기돼 왔다"며 "웅진사태를 계기로 이 시점에서 제도개선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법정관리 문제는 해당 채권자들, 그리고 국민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이를 고려해, 적절한 방안을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