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곽보연기자] "성장을 한 뒤 경제민주화와 분배 논의를 해야 한다."
17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재계 긴급 회동에서 회장단은 "수출과 내수가 전체적으로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시기상조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경제위기 상황에서 '성장만이 해법'이란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는 성장과 분배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충돌의 연장선상에서 경제민주화를 바라본 결과로, 산업화 과정에서 제기된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성장지상주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이날 회장단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경제계는 경제민주화에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시기와 내용에 대해 사회적 토론을 거쳐야 하는 것이 국가경제 차원에서 이로울 것이라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대내외적 경기침체로 국내기업이 투자를 하기 여의치 않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면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노사문제 등을 규제하려는 분위기가 투자와 고용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논의 시기가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달성하는 시점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본격 제기된 경제민주화 논의의 유예를 요구한 것이다.
아울러 동반성장 등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치권이 법안을 추진 중인 순환출자 금지와 금산분리 강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는 우려를 나타났다.
이 부회장은 "대·중소기업 간의 '낙수효과' 가 그동안 크지 않았고, 납품가 인하와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공감을 했다"며 "다만 대기업이나 재벌의 행위가 나쁘다고 해서 순환출자나 금산분리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의 구조에 장단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무시한 채 천편일률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강행토록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게 재계의 정서라는 설명이다.
재계는 이와 더불어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 등 증세론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부회장은 "세계 대부분의 경우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흐름에 맞춰 법인세 증세를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율은 낮추되 세원을 넓히는 방식으로 복지 재원을 확보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이 이날 회장단 회의 직후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이다.
-회장단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공감한다는 건가.
▲기업에서 공감하는 부분은 대기업 그룹의 지배구조 문제와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에 대한 부분이다. 납품단가 인하문제(단가후려치기)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는 회장단도 사회적 책임의 문제가 있다고 공감했다.
다만 대기업이나 재벌체제 자체가 나쁘다는 입장에서 나오는 순환출자 금지, 출총제 부활 등의 얘기는 공감하지 못했다. 재벌체제에도 장단점이 있으니 개선할 부분은 개선하고, 유지할 부분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회장단의 입장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해 작심하고 말한 것 같다. 이유나 배경을 설명해 달라.
▲대한상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회원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외국 석학들은 자본주의 4.0처럼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잘 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공감했지만, 성장과 고용을 훼손하면서까지 진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결국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우리 기업들은 일본이나 중국 같은 경쟁국 기업들보다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회장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제민주화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경제)상황이 안 좋은 만큼 시기와 내용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장단이 사회 대타협을 제안했는데 사회 환원과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사회 대타협을 위한 기구나 모임을 따로 가질 계획은 없다. 사회적 환원을 하자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없었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입법화되면 재계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카드를 꺼낼 건가.
▲내수보다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기업들은 매출과 이익이 수반돼야 투자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투자환경이 좋지 않아 투자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다.
때마침 정치권에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노사문제 등 강한 규제들을 가지고 나왔는데 이런 것들이 투자와 고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회장단 입장은 따로 카드가 마련됐다기보다 법안의 내용을 완화시켜야 자연스럽게 투자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늦춰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