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돌며 이라크 파병군 만나는 게 가장 큰 보람"

스코틀랜드 국립극단, <블랙 워치>로 내한..국립극장서 아시아 초연
로렌스 올리비에 상 등 22개상 수상..이라크전 파병된 특수부대 이야기 담아

입력 : 2012-10-26 오후 4:01:3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건물도 없이 전세계 투어를 다니며 연극활동을 하는 국립극단이 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여타의 국립극단과 달리 역사도 굉장히 짧다. 2006년 2월에 창단했으니 이제 겨우 7년차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성 넘치는 혁신적인 작품으로 불과 몇 년 사이 세계의 이목을 끄는 국립극단으로 급부상했다. 주인공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다. 이들은 공연장뿐만 아니라 공항, 페리호, 숲, 무술도장, 마을회관 등의 공간에서 혁신적인 무대를 마련해 관객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특히 창단 이듬해 만든 작품 <블랙 워치>는 로렌스 올리비에상 작품상 등 22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연출가 존 티파니는 <블랙 워치>의 성공을 기반으로 뮤지컬 <원스>를 맡기도 했는데 이 작품 역시 미국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공연계의 스타로 떠오른 존 티파니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화제작 <블랙 워치>를 들고 한국 관객을 찾는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의 여덟번째 초청작이자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작인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작이기도 하다.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진다.
 
<블랙워치>는 2004년 10월 30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특수부대인 '블랙 워치'의 연대원 800명이 미해병 4000명의 대체 인력으로 이라크전에 파병된 실제 사건을 다룬다. 극은 스코틀랜드의 한 허름한 맥주집에서 작가가 이라크전 참전 군인을 인터뷰하는 장면과 그들의 회상에 따라 이라크 도그우드 캠프에서의 일들이 현실과 과거로 교차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별다른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쉽게 입대를 결정한 청년들은 정치적인 셈법에 의해 추진된 파병,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인 전쟁터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26일 공연을 앞두고 국립극장 산아래에서 공연팀과 작품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연출가 존 티파니와 스코틀랜드 국립극단 총괄 프로듀서 닐 머레이, 배우 라이언 플레처, 로버트 잭 등이 참석했다.  
 
 
 
 
 
 
 
 
 
 
 
 
 
 
 
 
 
 
 
 
 
-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존 티파니) "2005년에 스코틀랜드 국립극단 창립을 준비하면서 2006년 한해의 프로그램을 짰는데 그때 이라크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 당시 영국 내에서 이라크전과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반미 시위까지 이뤄졌었다. 그래서 이것을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드라마로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했다.
 
그 당시 우리 예술감독이 신문을 봤는데 두 가지 상반된 기사가 나왔었다. 하나는 이라크전에 파병된 '블랙워치'의 부대원들이 살해됐다는 기사였고, 또 하나는 '블랙워치'가 다른 스코틀랜드 연대에 편입됐다는 기사였다. 그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합병을 하면서 부대원들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
 
그래서 예술감독이 작가와 연출가에게 이걸 작품으로 만들어보라고 했고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퇴역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면서 이 작품이 시작됐다. 여기까지만 말씀 드리겠다. 드라마에서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저녁에 보면 알게 될 것이다(웃음)."
 
- 스코틀랜드 국립극장과 <블랙 워치>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 (닐 머레이) "국립극단이라 하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기관이라 생각할텐데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은 상대적으로 어린 기관이다. 국립극단인데도 독특하게 건물이 없다. 공연을 만들고 투어를 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블랙 워치>는 2006년 프로덕션이 만들어지면서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3주 동안 공연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작품이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국제적이 수요가 늘어났다. 예상보다 투어가 빠르게 시작됐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많은 초청을 받으면서 국제호주페스티벌 담당자와 이야기했는데 기술 담당자가 내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이건 절대 투어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속삭이기도 했었다(웃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전세계 투어공연이 이뤄졌다. 40개 도시를 투어하고 이제 한국에까지 와서 공연하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다. 참고로 <블랙 워치>는 무대를 짓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주최 측에 모든 행사의 마지막에 배치해주기를 요구한다. 무대가 굉장히 크게 설치됐더라. 기대가 크고, 한국인들이 잘 즐겨주기를 희망한다."
  
- 무대 디자인에 대해 힌트 좀 달라.
 
▲ (존 티파니)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라는 군악대 행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기간 중에 군악대가 성에서 연주하는 행사인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유명하다. 아마 한국도 초청 받았을 것이다. 아주 장관이고 멋있는 프로그램인데 90년대에 그걸 봤을 때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 그 당시에는 나르시즘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행사는 자부심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 광경을 미니어처로 무대에 반영하게 됐다.
 
무대가 딱히 특별하지는 않다. 양쪽에 운송 컨테이너 있고 탑이 있는 정도다. 당구테이블도 등장한다. 사실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은 관객석이다. 공연을 할 때마다 관객석을 매번 지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연극무대보다는 록 콘서트 무대를 설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대 설치에만 3일이 꼬박 걸린다."
 
- 공연을 3일밖에 안 하는 것이 아쉽다.
 
▲ (닐 머레이) "이번은 이례적인 경우다. 최단기 공연인데 이렇게 하게 된 것은 한국 국립극장에서 특별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곳에서는 2주나 3주를 공연한다. 스코틀랜드에서 30여명의 스태프가 오기 때문에 돈이 꽤 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대카드의 후원을 받게 되어 국립극장에서 3일 동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예산 문제도 해결됐고 비영어권에서 공연하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이렇게 짧은 기간임에도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주최측에 감사하다." 
 
- 향후 아시아투어 계획이 있는지? 아시아 초연 국가로 한국을 택한 이유는?
 
▲ (닐 머레이) "우리가 선택했다기보다는 한국에서 초청했기 때문에 공연이 이뤄졌다. 영광이다. '아시아가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는 말은 쓰고 싶진 않지만 시기적으로 잠재 관객개발 차원에서 아시아 환경을 알아보던 시기에 초청이 들어와서 좋았다. 여기 오기 전 데이비드 그렉이 아시아를 방문했고, 베이징에서도 2013년에 아동청소년극으로 활동한다.
 
우리는 우호적인 관계, 초청, 인맥 속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이번에 한국 국립극장에서 이건 꼭 해야 한다고 결의해주셔서 하게 됐다.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공연을 더 흥미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시작으로 아시아에서 좋은 관계 맺길 기대한다."
 
- 이라크전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 (존 티파니) "2003년에 이라크를 처음으로 침공한 후 군인을 파견하고 두번째에 파병할 때 영국도 파병했는데 그 당시 논란이 많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지역에 안 보내겠다고 하다가 대선 직전에 토니 블레어가 그리로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영국에서 800명 정도가 파견됐고, 미 해군은 4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공연의 앞 부분에 그 당시 라디오에서 나온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다. 한국도 2003년 당시에 파병한 것으로 알고 있다."
 
- 특수부대 '블랙 워치'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점을 말해달라. 
 
▲ (닐 머레이) "작가인 그레고리 버크가 직접 하긴 했지만 이 자리에 없으니 대신 얘기하겠다. 세 명의 군인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개발했다고 들었다. 공연 후 그중 한 명이 우리를 찾아왔다. 고맙다고 하더라. '이걸 보고 내가 왜 이라크전에 참전했는지, 왜 내가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라이언 플레처) "이 공연할 때마다 이라크전 참전 군인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예전에 한 미군과 얘기했는데 '이 공연을 보는 게 우리 가족에게 내가 이라크전에서 무엇을 겪었는지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방법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경험한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가족에게 이 공연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거기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릴 수 있었다고 하더라. 참전한 군인들이 와서 이야기하는 게 공연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보람이다."
 
- 국립극단으로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공연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는지?
 
▲ (존 티파니) "우리가 국립극단으로서 기금을 받지만 그건 납세자들의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대표한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라는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당시 노동부가 집권했었고, 현재는 스코틀랜드 의회가 정권을 잡고 있다. 현 총리는 의회 개회 축하 공연으로 <블랙 워치>를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가 국민 대표하는 극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총리도 와서 우리 공연을 보고 갔다."
 
- 어떤 부분 때문에 이 공연이 인기를 끈다고 생각하나?
 
▲ (존 티파니)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하나는 아마도 실화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중동전, 아프간 전쟁 등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다. '파병은 잘못됐다, 전쟁을 하는 게 잘못이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이런 얘기들이 나돌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블레어 총리나 부시 대통령이랑 관련한 것 말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이유는 스코틀랜드 연극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 투어도 이걸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스코틀랜드의 연극은 음악과 화려한 비주얼이 함께 한다. 또 스코틀랜드의 연극 전통은 솔직하다는 것, 스토리를 잘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립극단 1기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을 살리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보편적 미디어가 통한 게 아닌가 싶다."
 
- 연출가의 다른 작품 뮤지컬 <원스>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극 <블랙 워치>와는 색깔이 많이 다른데?
 
▲ (존 티파니) "표면적으로 보면 아주 다른 프로젝트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보다 공통점이 많다. 나는 특정 토픽을 가지고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절대로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말자'는 게 내 생각이고, 토픽을 정하는 것은 사실 작가의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전달할까, 작품에 몰입하게 할까'를 생각한다. <블랙 워치>에서 백파이프를 들여와 군악대 행진을 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관객이 실제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하길 원한다. <원스>의 경우에는 바를 설치해서 관객이 술을 마실 수 있게 했는데 이걸 협상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웃음). 우리는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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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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