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영기자] 삼성생명이 29일부터 대대적인 경영컨설팅(경영진단)에 착수하면서 회사내부는 물론, 보험업계 전체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삼성생명은 이날 내부 공지를 통해 경영컨설팅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렸다. 삼성생명이 경영컨설팅을 받는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9년만이고, 박근희 사장이 취임한 뒤로는 처음이다.
이번 경영컨설팅은 삼성생명 내부 직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주도하고, 외부 컨설팅 업체와 삼성화재 일부 인력, 그룹 미래전략실의 일류화추진단이 보조하는 것이다. 업계 한쪽에서는 "과거 사례처럼 그룹이 진단을 주도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은 전자와 중공업 등 제조 계열사에 대해선 미래전략실이 주도해 '경영진단'을 실시하지만
삼성생명(032830),
삼성화재(000810),
삼성증권(016360), 삼성자산운용 등 금융계열사의 경우 내부 인력으로 이뤄진 TF와 외부 컨설팅업체, 다른 금융계열사 차출 직원 등으로 '경영컨설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열사에 대한 경영컨설팅이 사실상 경영진단에 해당하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에 따라 이번 경영컨설팅이 마무리된 뒤 삼성생명에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룹 정기인사 이전 마무리
삼성생명의 경영컨설팅은 그룹 계열사 사장단(CEO)과 임원의 정기 인사가 단행되는 12월 중순 이전에 끝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에서는 경영컨설팅 결과가 삼성생명 임원진에 대한 쇄신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경영컨설팅과 경영진단을 벌인후 해당 계열사 임원들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단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7월에는 삼성화재가 한달 가량의 경영컨설팅이 끝난 후 지대섭 사장이 물러나고 김창수 사장이 새로운 CEO로 선임됐다.
삼성테크윈에 대한 경영진단이 마무리된 후에도 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 8명 등 모두 80여명이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삼성서울병원 역시 그룹의 경영진단이 실시된 이후 CEO가 교체됐다.
하지만 삼성내에서의 위상을 감안할 때 박근희 사장이 교체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박 사장이 그룹 경영진단팀장을 거친 만큼 결정적으로 지적을 받을 사항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박 사장은 그룹 계열사 CEO 중 최고참으로 사실상 화재 증권 자산운용 등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생명에 대한 경영진단이 오랫동안 없었던 만큼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을 감안해 생명의 사업구조가 적절한 지 등에 초점을 맞춰 진단이 진행될 것"이라며 "대규모 문책으로 이어질 공산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경영진 리더십 '시험대'
지난 2010년 12월 박근희 사장이 중국삼성에서 삼성생명으로 자리를 옮길 때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그의 리더십에 적지 않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박 사장에게 삼성생명을 맡기면서 크게 두 가지를 주문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내 생명보험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삼성생명의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지지부진한 해외진출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생보시장에서 점유율 40%를 넘을 정도로 독보적인 회사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연간 수입보험료를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시장점유율은 2000 회계연도(2000년 4월~2001년 3월) 41.1%에서 2003년 36.2%, 2007년 27.8%, 2010년 26.2%로 줄어, 지난 10여년 동안 15%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그룹 안팎에서는 2005년 중국삼성을 맡은 이후 중국사업을 크게 성장시킨 박 사장이 위축됐던 삼성생명의 위상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 사장은 중국삼성 사장 시절 현장중심 경영을 통해 휴대폰과 TV 등 분야에서 중국시장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실제 박 사장은 취임 이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방카슈랑스, GA(독립대리점) 등 비전속채널의 비중을 늘렸다.
특히 올해 초부터 저축성보험의 공시이율을 5.1%까지 올리며 방카슈랑스 판매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여파로 중소 생보업체들까지 잇따라 공시이율을 인상하면서 시장경쟁이 과열되자 금융당국이 저축성보험 단속에 나서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GA 채널에서도 공격적으로 판매 통로를 확장해 중소업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박 사장 체제에서도 삼성생명의 점유율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4~6월) 삼성생명의 수입보험료는 5조6955억원으로 전체 생명보험 시장의 23.22%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의 26.85%에 비해 3.63%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해외시장 진출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 사장은 취임 직후 ‘해외사업팀’을 해외영업 부문으로 확대하고 스테판 라쇼테 부사장을 책임자로 앉혔다.
라쇼테 부사장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선라이프 아시아 총괄사장으로 근무하며 아시아지역 매출을 3배 이상 끌어올린 해외통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까지 삼성생명의 해외사업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중국 내 합작법인인 중항삼성의 지점 쓰촨분공사를 설립한 게 유일하다.
쓰촨분공사는 베이징과 텐진, 칭다오에 이은 중항삼성의 네번째 영업망으로 현지직원은 20여명에 불과하다.
박 사장은 동남아지역 진출과 해외 보험사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뚜렷한 실적은 없는 상태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박 사장의 취임 이후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삼성생명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취임 2년이 다 되면서 박 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