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30일 현대음악 축제인 '아르스 노바' 공연의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서울시향의 연습실을 방문했다. 마디 단위로 끊어 가며 맹연습을 하고 있는 곡은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첼로 콘체르토 그로소'다. 현대음악의 거장 페트르 외트뵈시가 자신의 곡을 직접 지휘하는데, 관객뿐만 아니라 단원들에게도 이같은 기회는 흔치 않다. 연주 사이사이 단원들은 마에스트로의 요구사항을 적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외트뵈시는 표정 하나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마에스트로는 아니었다. 진솔함과 인자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연습 도중에 가장 많이 나온 말도 '좋아요, 아주 좋아요, 고마워요.' 같은 것들이었다. 신기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엄청난 권위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특유의 카리스마는 그의 뛰어난 기억력과 세밀한 귀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연습 도중, 그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모습으로 기다리자 첼로의 작은 소리가 희미하게 스미다 사라지는데 마치 마술처럼 느껴졌다.
외트뵈시의 바로 옆에서 진지한 태도로 연습 도중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 솔리스트라는 중책을 맡은 첼리스트 양성원이다. 1년 넘게 악보를 가지고 씨름했다는 양성원은 이 작곡가 겸 지휘자와 섬세한 조율 과정을 거치며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악기 소리 하나, 음표 하나를 소홀히 지나치지 않는 외트뵈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양성원을 만나 이번 음악회와 외트뵈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외트뵈시의 '첼로 콘체르토 그로소'를 연습한 소감은?
▲ 음악사에는 현대음악이 항상 있었다. 명곡이라는 것은 한 시대를 앞서가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세대, 다음 다음 세기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명곡이다. 시간이 있어야만 되는 일이다. 페테르 외트뵈시의 '첼로 콘체르토 그로소'는 두말 할 것 없이 너무나도 앞서가는 곡이다. 나 스스로만 보더라도 첼로에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음과 리듬을 연주해야 한다. 한두 군데면 괜찮겠는데 그런 조합이 계속 이어져서 나온다. 배우는데 어마어마하게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 이 제안을 한 진은숙 선생님 원망도 엄청나게 많이 했고 당시 베를린에 계시는 분(외트뵈시)도 원망을 많이 했다(웃음).
- 어려웠던 점은?
▲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음의 효과를 찾는 과정에서 제 자신도 너무 답답하고 그랬다. 여름에 베를린에 가서 세계 초연을 듣고 오긴 했는데 작곡가가 그 뒤로 많이 고치셨다. 사실 내가 들은 세계 초연과 이번 주에 하는 곡은 다르다. 여러 부분들이 아주 많이 수정됐다. 수정하는 과정에서 작곡가로부터 새로운 악보를 받고 여기저기 고쳤다는 메일도 종종 받았는데 그런 게 답답해서 루체른 페스티벌 사이에 짬을 내서 잠깐 작곡가를 만나러 갔었고 또 8월 달에 한 번 더 만나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아주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뒤로부터 재미가 붙었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다 아는 음들, 다 아는 리듬, 다 아는 다이내믹을 하면 재미가 없다. 새로운 게 없는 거니까. 이번에 외트뵈시의 곡을 통해 새로운 리듬, 새로운 음, 새로운 타악기들의 조합을 연주하는 것인데 관객들도 열린 마음으로 오셨으면 한다. 서울에서 이 공연을 들으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듣는 건데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한국 창에서 나오는 것과 유사한 소리를 피리, 첼로도 뿜어낸다. 헝가리와 우리의 문화나 역사, 혼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나?
▲ 최근에 바흐와 모짜르트 협주곡 같은 규모 있는 곡을 연주했더니 육체적으로 많이 소비가 됐다. 특히 이 외트뵈시의 곡에서는 굉장히 빠른 활놀림 안에서 큰 소리, 새로운 소리 찾다보니까 힘들다. 오늘 아침에는 결국 파스를 붙이게 됐다(웃음). 베토벤, 쇼스타코비치이 곡을 할 때는 아파본 적이 없는데. 근데 재미 있다(웃음).
- 첼리스트 양성원이 생각하는 외트뵈시는 어떤 사람인가?
▲ 작곡가들 중에 본인이 쓴 것을 연주할 적에 정확히 못 듣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 귀신처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소리를 하나하나 듣고 지적해 준다. 또 헝가리 사람들의 노래와 리듬을 현대적으로 바꾸는데 그 구조가 굉장히 뚜렷하다. 그런 것을 보면 제일 놀라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신사답다. 아침에도 연주를 했는데 이제 다들 지쳐 가는데도 외트뵈시는 끝까지 한결같다. '사람들이 공기를 마신다'고 표현하지 않나? 이분은 '음악을 마시면서' 본인의 음악과 호흡한다. 어떻게 보면 신부님같기도 하다. 마치 음악을 통해서 수양하시는 분 같다.
- 외트뵈시는 해외에서는 유명인사이지만 아마도 한국관객에게는 낯설 것이다. 외트비시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 최고다. 특히 유럽에서 그렇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기가 막힌 지휘자다. 지휘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악보를 보면서 눈으로 지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대적으로 귀에 들려오는 것을 악보에 담는다. 귀에서 들려오는 것은 눈꼽만큼도 안 흘린다. 지휘 테크닉도 좋은데 음악가로서 귀로 지휘를 한다는 게 너무나도 경이롭다. 늘상 하는 일이면서도 리허설 중 늘 무언가를 찾고 조그만 것들도 계속 수정을 한다.
예전에 비엔나의 귀족들이 베토벤한테 왜 이렇게 추하게 작곡하냐고 그랬었다. 당시 베토벤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베토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 즉 화나 증오, 사랑 같은 것들이 내 눈 앞에 보일 때까지 곡을 쓴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마인드가 외트뵈시한테도 있지 않을까 싶다.
- 베를린필 초연과 이번 연주를 비교해 달라. 가장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 베를린필은 정말 연주가 좋았다. 그들은 새로운 소리를 내는 데에 적응이 많이 되어 있는 오케스트라다. 그들의 연주 중에는 단 한 번이라도 현대음악이나 20세기 음악이 없었던 프로그램이 없어요. 그런 오케스트라들과는 아무래도 조금 차이가 있다. 서울시향이 이제 많이 커가는 오케스트라니까. 젊은 음악가들도 많고. 그런데 오늘 아침에 놀랍게도 훌륭한 연주를 했다. 놀라울 만큼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연주를 하고 있다.
- 무엇이 재미 있나?
▲ 새로운 음악, 그러니까 새로운 소리와 리듬을 찾는다는 것이 재밌다. 그리고 이건 아주 개인적인 얘기인데 전 세계에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가 지금 당장은 세 명밖에 없다. 여러 사람이 할 수 있는 곡은 많다. 근데 이 곡은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보람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에서 다섯 개밖에 없는 시계를 차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현재 세 사람밖에 못 하는 연주를 한다는 것, 요런 것들이 재미 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이 곡을 배웠는데 그런데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다.
- 아까 리허설 때 보니까 외트뵈시 선생님과 중간중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데?
▲ 이 곡의 악보를 보면서 '여기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기는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말씀 드리는데 외트뵈시는 그런 것들을 다 편하게 받아 들이신다. '소리의 균형 면에서 이 악기가 이 부분에서 조금 더 나와주면 내 연주가 더 편할 거 같다'는 류의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면서 받아들인다.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이런 얘기를 하면 재미가 있다.
- 다른 클래식 고전들을 준비하면 또 다른 연주기회가 자주 생기는데, 이런 현대음악 곡은 사실 언제 다시 연주하게 될 지 모른다. 혹시 억울한 느낌이 들지는 않나?
▲ 그런 거 생각한다면 이런 연주를 못 한다. 예전에는 한동안 연주가 되다가 다시 안 되고 하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음악도 있었는데 지금은... 연주를 잘 하면 또 기회가 오지 않을까?(웃음) 두 가지인 거 같다. 진짜 몸에 밸 정도로 준비를 열심히 했을 경우 다시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고, 그냥 악보에 써져 있는 것만 했을 경우에는 그 곡을 다시 하고 싶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는 우리한테 있다. 다시 연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열심히 하느냐, 아니면 다시 연주하게 되지 않게끔 하느냐(웃음).
요즘은 사실 현대곡도 많이 연주된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렇다. 어렵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개척해야할 영역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르스 노바'같이 큰 시즌 공연인 경우에는 많이들 와주신다. 그런데 사실 자그마한 곡들도 작곡이 많이 되고 있다. 자그마한 규모의 홀에서 하는 연주회들도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새로운 것을 들으면 그게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자기 세상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넓은 세상을 보고, 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도 한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기가 못 들었던 음색을 들으면서 청각으로 느끼는 세상이 넓어진다는 것, 다른 차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만큼 우리 몸 안에서 세상이 좀 더 넓혀진다.
- 이번 연주회에서 관객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 외트뵈시의 '첼로 콘체르토 그로소'는 헝가리 산맥에서 말이 달리는 듯한 느낌의 곡이다. 우선 1악장에서는 작곡가가 거칠지만 깊이가 있는 헝가리 산맥의 혼을 담으려고 했다. 외트뵈시는 헝가리 트랜실배니아 산맥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가득 담겨 있길 원했다. 그래서 산의 모든 기를 마셔서 첼로로 다시 뿜어내는 게 나의 숙제이다.
그 다음에 1악장 끝에서는 새로운 주법으로 굉장히 빠르게 연주하는데 빨리 가는 와중에서 손가락 운지법을 자꾸 바꿔주고 음들을 조금씩 다 틀리게 잡아줘야 한다. 어마어마하게 연습을 많이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진짜 조심해서 듣지 않으면, 첼리스트의 운지법을 봐 가면서 듣지 않으면 모를 만큼 어려운 기술이 필요하다. 화려하게 어려우면 덜 억울하겠는데 나와 지휘자만 아는 부분이다(웃음).
그리고 2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첼로 섹션과 솔리스트인 내가 서로를 견제하는 듯한 느낌으로 간다는 것이다. 마치 투박한 사투리로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것처럼 연주한다. 이밖에 2악장 중 두세 부분 정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2악장이 끝났을 때 굉장히 조용한 부분이 있는데 그때는 마치 화가가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을 지우는 것처럼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음들을 지우듯이 연주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3악장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연주해야 한다. 처음에는 '작곡가는 바이올린을 위해 곡을 쓰지 왜 첼로를 위해 써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웃음). 3악장 끝 부분에서는 바이올린으로 연주해야 할 것만 같은 고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수건을 들고 무대에 나가야 한다. 활의 송진을 닦아야 그 다음 고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방울이 팍 터지듯, 물음표가 떠오르듯 음이 올라가면서 곡이 끝난다. 그 음은 제가 첼로에서 지금까지 냈던 어느 음보다도 높은 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