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미래기술, 눈치보는 정부 탓에 예산만 2년째 표류

입력 : 2012-11-14 오후 4:41:13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정부가 대표적인 기간산업인 철강업계의 손을 놓아버렸다. 철강업계가 학수고대했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대한 예산 지원이 2년째 표류하면서 업계 바람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소환원제출 기술에 대한 예산 배정이 올해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철강산업 육성방안을 내놓으면서 '철강산업 명품화 전략'에 따라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예산 배정이 올해도 어렵다는 소식에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사활을 건 포스코 등 기술개발 사업 관련업계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됐다.
 
◇예비타당성 조사 '긍정적'..예산확보는 2년째 실패
 
수소환원제출 기술이라고도 불리는 'CO₂ free 차세대 제철기술'은 철강 제조과정에서 환원제로 석탄(탄소) 대신 수소를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공법이다. 고로에서 철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는 철광석에 유연탄을 첨가해 쇳물을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온실효과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하지만 수소를 이용하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발생해, 대기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차세대 기술'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철강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환원제를 탄소에서 수소로 변환하는 기술 등을 개발하기 위해 2020년까지 총 사업비의 40%에 해당하는 112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지난해 말에는 예비타당성 결과가 늦게 나왔다는 이유에서 올해(2012년)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기술성과 정책성, 경제성 등을 포함한 예비타당성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후 지식경제부는 2013년도 예산은 꼭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11월 초 국회예산처에서 "기술개발의 수혜가 포스코 등 대기업에 국한된다"며 예산배정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 문제는 꼬였다. 업계 내에선 사실상 올해는 예산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어쩔 수 없다"며 꼬리를 내렸다.
 
◇"장기적 경쟁력 고려해야.. 동반성장의 기회도 될 것"
 
국회예산처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관련업계에서는 내심 서운한 눈치다. 경제민주화가 대선 화두로 등장하자 이를 의식해 엉뚱한 기술개발 예산마저 줄였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기술개발로 인해 우리나라 철강제조 기술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국가에 가져다 줄 경제적, 환경적 영향과 혜택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파이넥스 기술 개발에 여러 업체가 참여했지만 포스코만 그 수혜를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 업계에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항변했다. 개발 당시 국내 고로철강사는 포스코 하나 뿐이었고, 기술개발 후 각 기업 사정에 맞게 기술 채택 유무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기술개발은 국내 고로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두 곳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35개 기업이 참여할 계획이었다.
 
한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사업'은 '기술의 집합체'라 불릴 정도로 철강업체의 제선·제강기술 뿐 아니라 설계, 설비, 엔지니어링까지 종합적인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라면서 "대형 업체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뿐 아니라 원료수입, 수소정제작업 등의 관련분야 중소기업들이 참여 의지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술개발의 수혜가 대기업에 국한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오히려 중소기업이 참여해 인력양성과 동반성장을 꾀할 수도 있었다"며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일본, 정부와 업계 '혼연일체'로 기술개발에 힘쏟고 있어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과 유럽연합(EU), 미국 등은 4~5년 전부터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 이산화탄소 저감 기술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특히 일본은 3~4년 전부터 정부 주도 아래 'COURSE 50'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신일본제철(NSC)과 고베강철, 대학 연구기관 등이 합심해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개발에 착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업계가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2~3년만 지나면 기술 격차가 벌어져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며 "기술력이 곧 경쟁력인 상황에서 (정부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기술개발에 뒤쳐진다"고 말했다.
 
철강산업은 제조업 중에서도 온실가스 최다 배출산업이다. 이에 따라 향후 이산화탄소 저감 기술 보유여부가 철강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철강산업은 전세계 온실가스의 3~5%정도를 배출하고 있고, 국내에선 무려 12.1%를 차지한다. 특히 쇳물 1톤을 생산하는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고로의 경우 2.18톤이며, 전기로의 경우 680kg이 배출된다. 철강업계가 이산화탄소 저감 기술에 목말라하는 대목이다.
 
한 전문가는 "연구기관과 학계 등에 관심 있는 사람도 많고 인프라도 갖춰진 상태인데, 출발 지점부터 맥이 끊긴 것 같다"면서 "일본은 정부와 업계가 나서서 '혼연일체'로 임하고 있는데,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부에서 이끌어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해당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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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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