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체제 25년)존경받지 못하는 '1등' 기업

(특별기획)②눈부신 성장 이면 '오점'이 국민 이중감정 굳혀

입력 : 2012-11-29 오후 7:16:09
[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기자] 1등의 숙명일까. 18대 대선을 앞두고 불어닥친 경제민주화 열풍은 '재벌개혁' 요구로 이어지고 있고, 삼성은 어김없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삼성에 대한 국민 정서는 이중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1의 기업이자 세계 속에 한국 산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자랑스러운 기업이지만, 동시에 질시와 비판의 대상이다. 한국 '재벌기업'의 대표로서 양극화나 재벌독점 문제가 나올 때마다 비판의 중심에 서게되는 이유다.
 
이건희 회장 취임 후 25년간 삼성그룹의 외연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연계매출은 지난 1987년 9조9000억원에서 올해 384조원으로 규모가 39배 가까이 늘면서 한해 우리나라 예산보다 60조원가량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반면 찬란한 성공의 이면에는 편법·위법 등의 '불편한 진실'들도 있다.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삼성)
 
조직적인 가격 담합,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법 위반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일부 계열사에서는 '무노조 경영'을 위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모습이 논란을 일으켰다.
 
어느 기업에나 있을 수 있는 문제지만, '삼성'이어서 비판과 질타는 더욱 가혹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법에 따라 적절하게 기업을 규제하고 통제해야 할 사법권력이 유독 삼성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삼성은 법 위에 군림한다"는 인식을 줬다는 점이다.
 
지난 2001년 신년인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은 "우리 삼성은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기업상을 구현해야 한다"며 "소외된 이웃에 눈을 돌리는 따뜻한 정과 믿음이 흐르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삼성이 '따뜻한 상생기업'을 선언한 지도 벌써 11년이 지났지만 과연 현재 삼성의 모습이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생활을 지배하는 삼성
 
지난 3분기 한국 소비자들은 10명 중에 7명꼴로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선택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삼성전자는 피처폰과 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폰을 368만700대 팔아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 71.4%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가구당 가전제품 보급률이 90%를 돌파한 상황에서 고품질 경쟁력으로 무장한 냉장고, TV, 세탁기 등이 가전분야에서 지배력을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국산 가전'이 잦은 고장, 품질 불량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던 지난 80~90년대부터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까지도 삼성 제품은 한국인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10년 1월 미국에서 열린 CES에 방문한 이건희 회장이 3D TV를 체험해보고 있다. (사진=삼성)
 
반면 삼성이 국내 소비자들에 대해 그만큼의 '보답'을 했냐는 점에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례로 금융위기로 국가 전체가 고통받던 지난 2008년, 20만원대의 저렴한 세탁기 모델을 단종시키고 고가인 드럼세탁기 6개 모델의 가격을 10만원 가량 인상한 사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2010년에도 삼성은 광주지방교육청 등에 에어컨과 TV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200여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고, 바로 이전 해에는 10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과 공급량 담합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삼성의 이같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정부의 제재가 대부분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점이 여론을 악화시켰다.
 
국내 소비자들을 '베타테스터'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전통적으로 삼성은 한국에서 신제품을 출시한 뒤 국내 소비자의 반응을 토대로 제품을 개선해 해외시장에 출시해왔다.
 
소비자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까다로운 안목, 적극적인 의견 개진 덕분에 한국 시장은 신제품 개발의 이상적 토양이 됐던 것이다. 베타테스터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개발 단계에서 상용화하기 전에 실시하는 제품 검사 작업이나 투입되는 인력을 의미한다.
 
또 국내 판매용 휴대폰과 수출용 휴대폰의 성능과 가격을 차별적으로 적용한다는 논란도 있다.
 
◇"나홀로 성장 지나치다" 비판도
 
삼성은 동반성장 문제에서 항상 거론되는 '일감 몰아주기'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2010년말 기준으로 제일기획·삼성SDS·삼성물산·삼성전자로지텍 등과 6조2500억원 규모의 내부거래를 집행해 10대 그룹 중 1위를 기록했다.
 
물론 삼성은 동반성장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삼성의 9개 계열사가 1차 협력사 3000여개 업체와 협약을 맺고, 1차 협력사는 다시 2차 협력사 2000여곳과 협약을 맺어 모두 5208개 업체가 삼성의 동반성장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올해 동반성장지수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동반성장 관련 투자의 규모적 측면만을 늘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현재 삼성은 부품구매 담당부서에서 단기실적을 올려야만 승진이 가능한 경직적 조직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올 들어 삼성의 하도급거래 관행에 많은 비판이 제기된 것 역시 '관리의 삼성'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라는 평가가 있다. 즉 윗선에서 아무리 상생협력을 강조해도 내부의 인센티브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다는 주장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지금 삼성에겐 상생경영방안 이전에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에 대한 법 준수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며 "1차 협력업체들에 대한 현금·금융지원보다는 본질적 차원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삼성)
 
◇'추격자 전략'의 한계
 
한국 젊은이들에게 삼성의 파란색 로고는 성공을 상징한다. 삼성그룹의 계산에 따르면 한해 평균 10만~12만명의 젊은이가 삼성 관문인 SSAT(삼성직무적성검사) 시험에 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실제로 삼성에 입사하는 인원은 9000명 수준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삼성에 입사한 젊은이들은 입문교육에서부터 ‘메기론’이라는 이론을 체화하며 ‘삼성인’으로 거듭난다. 메기론은 포식자인 메기를 미꾸라지 무리 속에 함께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 덕에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자란다는 양식업계의 경험을 경영전략으로 승화시킨 이론이다.
 
하지만 메기론이 곧 삼성 경쟁력의 한계를 규정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조직이 수직적 구조가 되도록 함으로써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는 효율적 실행만 강조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을 통해 세계1류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런 전략은 여태껏 삼성을 성공시킨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최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앞으로 삼성은 (추격자를 벗어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진기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창의적 아이디어는 직원들의 이른 출근이나 야근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애플과 구글이 자유롭고 여유 있는 회사 문화를 추구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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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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