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올해 제약업계는 시련의 한 해였다. 연초 약가인하에 대항하기 위해 들어선 협회의 새 수뇌부는 2개월도 채 못가 좌초됐고, 예정된 대규모 약가인하 단행으로 초토화됐다.
정부가 ‘혁신형 제약사’ 카드를 빼들고 R&D 등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지원책이 나오지 않는 등 실효성에 심각하게 의문이 제기됐다. 연이어 터진 동아제약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업계에 또다른 충격을 줬다.
다만 올해 2개의 토종 신약이 출시됐다는 게 위안이 되는 수확이다.
◇새 수뇌부 출범 2개월만에 좌초
제약업계는 연초부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지난 2월 제약협회는 윤석근
일성신약(003120) 회장을 새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적극적인 약가인하 반대와 업계 소통을 요구하는 중소제약사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새 지도부가 출범한 것이다.
하지만 윤석근 체제는 2개월 만에 좌초하고 만다. 정부와의 일괄약가인하 소송에서 참패하면서 전임 주류 세력(대형제약사들)들의 두터운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상위제약사와 중소제약사간의 소통을 이끌지 못한 책임이었다.
◇대규모 약가인하, “매출 1조7천억 감소”
이후 업계에 본격적인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복지부는 예고대로 4월 1만4000개 품목 중 6500여개 품목에 대한 대규모 일괄약가인하를 단행했다. 복지부는 이 약가인하로 의약품 가격이 평균 14% 인하돼, 전체 약품비 약 1조7000억원의 절감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대국민 홍보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제약업계로서는 딱 그만큼 매출이 떨어져나가는 부담을 안아야 했다. 업계가 "건강보험 재정 충당의 부담을 업계에만 떠넘긴다"고 한목소리로 반발한 이유다.
제약업계 한 임원은 “제약업계가 봉도 아니고, 건강보험 재정을 왜 우리가 충당해야 하냐”며 “정부 정책으로 구멍 난 예산을 제약업계가 고스란히 책임지는 것은 정말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형제약사,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
이후엔 정부의 '당근'이 제시됐다. 약가인하로 어려움에 처한 제약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혁신형 제약기업’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복지부는 6월 43개사를 선정해 혁신형제약사로 발표했다.
당시 임채민 복지부 장관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계기로 우리 제약산업이 신약개발과 글로벌 진출을 양 날개 삼아, 산업전반에 걸쳐 자발적인 혁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혁신형제약사 선정 이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어떤 정책적 지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선정 당시만 해도 곧바로 정책적 지원을 해 줄 것처럼 말하더니, 현재까지 약가우대나 R&D 지원을 받은 제약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내년 예산도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산 확보 없이 선심성 정책을 내 놓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동아제약 ‘리베이트' 수사..업계 충격
10월 초, 정부의 합동리베이트 수사가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을 정조준했다. 퇴직 영업사원의 내부 고발에 따라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이다.
특히 수사팀 관계자가 “다른 국내제약사와 다국적제약사의 리베이트 첩보가 들어와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업계는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의 리베이트 관행은 깨기 힘들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완전히 척결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업계 전체가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토종신약 2개 출시..그나마 위안
먼저 일약약품은 토종 순수기술로 만든 첫 백혈병치료제 ‘슈펙트’를 내놨다. 그동안 백혈병치료제는 모두 다국적제약사들만의 제품으로, 약값이 비싸 환자들의 부담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기술로 만든 신약이 출시되면서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부담이 크게 줄게 됐다.
LG생명과학은 토종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를 출시했다. 특히 이 약은 최근 의료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DPP-4억제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DPP-4 억제제는 기존 당뇨병 치료제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으로 최근 개발된 제제다.
이밖에도 지난달 15일부터 타이레놀, 판콜에이 등 13개 안전상비의약품이 편의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야간이나 휴일에 겪었던 의약품 구입 불편이 다소 해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