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은행권은 새정부의 금융정책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큰 화두였던 만큼 금융권에도 적지 않은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에 따른 은행업종의 변화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제시한 규제안들이 이미 추진중이거나 문재인 후보가 제시했던 것보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이유다.
◇가계부채 해결해 중산층 재건..최대 70% 채무 감면
20일정치권과 은행권 등에 따르면 박근혜 당선인이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금융정책은 100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 문제다. '중산층 70% 재건'을 다음 정부의 첫번째 목표로 내 건 박 당선인은 가계부채 대책을 그 첫 과제로 꼽았다. 서민들을 내리누르고 있는 빚을 그대로 두고서는 경제의 허리를 튼튼히 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박 당선인의 가계부채 해법은 자활의지가 있는 대출자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골자다.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신용회복(프리워크아웃) 신청자의 빚 50%, 기초생활수급자는 70%까지 채무를 감면해준다는 구상이다.
기금 마련은 신용회복기금과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고유계정 차입, 부실채권 정리기금 등을 통해 1조8000억원을 마련한 뒤 이를 바탕으로 10배 규모의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18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은 금융회사와 민간 자산관리회사가 보유한 연체채권을 매입해 과다채무자의 빚을 채무를 감면하고 장기·저리 전환대출에도 활용한다. 연 20% 이상 고금리 다중채무자는 1인당 1000만원 한도에서 저금리 장기 상환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을 위해서는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를 도입해 소유주가 주택 지분 일부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에 넘기는 대신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내고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를 통해 전세금이 없는 세입자를 위해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금융권 대출을 받고 이자는 세입자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렌트푸어(Rent poor)'를 지원한다. 정부는 각종 세금면제 혜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금융기관 감독 강화도 추진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강화 방안도 추진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는 대부업체 감독권한을 금융감독원으로 넘기고 자본금 등 설립요건을 강화할 방침이다. 약탈적 대출과 불법 추심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개인별 신용평가 결과를 의무적으로 알리고, 이에 대한 항변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아울러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에만 적용하고 있는 '대주주 적격성 유지심사'를 모든 금융사로 확대하고 기준에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의결권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 카드사, 증권사의 대주주도 감시와 견제를 받게 된다.
은행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가계부채 감면이나 프리워크아웃 대상 확대가 시행될 경우 손실은 불가피하다. 국민행복기금 재원을 은행권이 일정부분 분담하도록 할 가능성도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가계대출 탕감이나 사회공헌 활동 등 정치권 요구가 더 늘어난다면 은행권 전체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금융'산업' 측면에서도 고려를 해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 "은행권 규제 크게 심화되지 않을 것"
은행권의 긴장감과는 달리 대다수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규제 리스크가 지금보다 심화될 가능성은 낮은 편으로 분석했다.
황석규 교보증권 연구원은 "은행건전성 강화를 위한 보수적 충당금 적립과 배당억제 정책,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자산성장 억제 등의 규제는 누가 당선이 됐든 추진됐을 것"이라며 "서민금융 지원 차원의 대출 금리 인하 분위기도 강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방안은 문재인 후보측에서 제시한 강도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진단했다.
이고은·최수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규제 리스크 계량분석: 대선 이후 규제 기회비용 순증 둔화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가계부채와 관련된 대선 공약을 보면 현재 이미 시행 중인 내용이 대부분이고 그에 대한 리스크는 이미 반영돼 있기 때문에 대선 이후 규제 리스크의 증폭이 심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자세한 그림이 나오기 전이지만 정부와 은행이 가계부채 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 분담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부담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이지만 어느 한 쪽이 큰 짐을 지는 방식은 아닐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