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까지 사는데..평생 현역이 모범 답"

(토마토인터뷰)은퇴전문가 강창희 소장,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로 새출발
"샐러리맨 수난 시대.. 정년 앞서 제2인생 적극 준비해야"

입력 : 2013-01-02 오후 2:00:00
[뉴스토마토 강진규기자] "언론에서도 '은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퇴할 생각이 없는데 자꾸 은퇴하라고 하니 부담이 된다."(웃음)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는 우리나라 최고 은퇴전문가로 입지를 굳혔지만 정작 자신은 `은퇴`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가 강조하는 최고의 은퇴준비가 `평생 현역`이기 때문이다. 
 
투자교육과 은퇴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지난해 미래에셋 부회장에서 퇴임하고 올해 여의도에 미래와금융 연구포럼을 열어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다음은 강창희 대표와의 일문일답.
 
◇ "성장기 증권업계 근무는 큰 행운"
 
- 어떻게 금융투자업계에 받을 딛게 됐나.
 
▲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증권업계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복학생으로 4학년 여름방학에 취직시험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한국거래소 채용공고를 보고, 워밍업 차원에서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다. 취직이 어려울 때라 입사를 했다. 당시 명동 옛 일제시대 조선거래소 자리가 한국거래소였는데, 삐걱거리는 건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증권시장 육성정책이 발표되고, 증권시장이 계속 성장해오던 기간이었다. 성장시기 증권업계에 근무하게 돼서 행운이었다.
 
- 당시도 취업난이 있었나.
 
▲ 시골에서 논과 집 팔아서 대학 공부를 했는데 친척중에 2명이 취업을 못하고 있었다. 3번째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노심초사했는데 취직이 돼서 정말 기뻤다.
 
- 증권시장 성장기에 입사해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
 
▲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격탕매매라고 해서 지금의 농수산물시장처럼 손으로 작대기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 금융투자업계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현대투자신탁운용 대표, 굿모닝투자신탁운용 대표 등 큰 직책을 많이 맡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하나 꼽아달라.
 
▲ 1999년 IMF 금융위기 직후 현대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중일 때 '바이코리아펀드'를 출시해서 엄청나게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IMF 위기가 극복되고 300포인트까지 떨어졌던 주가지수가 1000을 돌파했다. "드디어 '바이코리아펀드'와 더불어 나는 뜨는구나" 생각했는데 1999~ 2000년 정보기술(IT)버블이 꺼지면서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손해도 입히고, 순식간에 펀드가 줄어드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투자라는 것이 주가가 오른다는 말만 듣고 샀다가 떨어지는 것을 예측해서 팔고 그러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근시안적 재테크로는 돈 못 벌어"
 
- 그때부터 투자교육을 새롭게 해야된다는 생각을 갖게됐나.
 
▲ 그때 펀드투자는 투자의 원칙보다 바이코리아펀드가 사니까 주가가 오르는거고 팔면 또 떨어지는 것이었다. 단기시장 전망만으로 사고 파는 재테크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  IMF 구제금융과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 우리 경제가 개방화 됐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자체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세계 경제 동향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민감하게 좌지우지 되는 경제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투자)은 단기적으로는 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파멸이라는 걸 느꼈고, 그래서 단기 시황 전망에 의한 재테크는 정말 어렵다는 것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 은퇴와 투자교육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전문가라고 하는데 그런 공부를 미리 다 해둬서 전문가가 아니고,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해야 하니까 공부를 하게 돼서 전문가가 된다고 본다. 한때 일본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일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다보니 공부를 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투자교육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펀드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원칙을 지키고 장기분산투자를 하도록 해야 하는데 설득이 필요해서였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의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왜 투자를 하냐는 물음에 노후대비로 투자한다고 대답한다.
 
◇ "공부하다보니 은퇴전문가"
 
우리는 돈을 벌기위해서 투자한다고 대답한다. 이는 '무목적 충동투자'다. 선진국은 노인들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 세대들도 노후대비로 한다고 하기 때문에 30~40년 설계가 있고, 장기투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투자는 노후대비로 하는 것이라며 '노후설계'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베이비부머의 정년퇴직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노후문제가 부각되며 '그러면 노후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들어오고, 이에 대답하기 위해 공부를 하다보니 은퇴전문가가 됐다.
  
- 매년 300회 이상 강연을 소화한 걸로 알고 있다. '아이언맨'이라는 별칭도 얻었는데, 한결같이 공부와 강연을 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 일본에서 8년 정도 근무를 했다. 우리보다 20년 정도 앞서서 고령사회를 경험한 사회에서 살면서 '고령사회가 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그때 관련 책을 사고 자료를 모았던 것이 도움이 됐다. 두번째로는 원칙에 관한 강의를 하게 되면 사람들이 잘 듣지를 않는다. 결국 '주가는 오릅니까 떨어집니까, 뭘 사야 돈을 법니까'라는 질문이 10년전만 해도 대부분이었다.
 
그때 원칙을 지키는 투자를 해야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2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모든 전문용어는 중학교만 졸업하면 알아듣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당연한 원칙을 얘기하더라도 경청을 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화나 사례를 많이 수집해서 사람들이 그렇구나라고 느끼도록 노력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강의를 다니면서도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기차안에서도 가방에 가위와 신문을 가지고 다니면서 스크랩을 한다. 또 우연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이 2~3년 후에 사회의 관심대상이 됐던 것들이어서 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 "낙관론이 위기 극복의 비결"
 
- 가장 지치고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 지난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나던 해 우리나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였다. 그때 대우증권 조사부 과장이었다. 회사로부터 1년을 기본급만 받고 일본에 가서 대학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본급만 받았기 때문에 가족을 데리고 가서 생활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아내는 불고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도 가끔 햄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어서 한편으론 어렵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1998년 현대투신운용 대표를 할 때였는데, 국내 많은 투신사들이 러시아의 국채를 편입해서 러시아펀드를 만들어서 정기예금 금리보다 1~2% 수익률이 높다고 광고하고 팔았다. '러시아가 부도를 내겠느냐 결국 예금과 똑같은 것'이라며 팔았는데,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러시아 국채가 휴지조각이 되고 (펀드)액면의 20%밖에 내줄수 밖에 없게 됐다.
 
전국의 투자자들이 몰려와서 기물을 파괴하고 그 때 몇 달동안이 참 어려웠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어떤 정신지체장애자 딸을 데리고 혼자 사는 여자분인데 가사도우미를 해서 돈을 벌어 당시 천몇백만원을 러시아펀드에 투자했는데 원금이 20%로 줄어드니 물어주지 않으면 회사앞에서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하겠다는 편지를 받았다. 정말 가슴도 아팠고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때 '금융회사가 투자상품을 형편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팔아서는 안되겠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 그런 난관들은 어떻게 극복하셨나.
 
▲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성격이 비교적 긍정적이다. 또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우리 경제가 고성장을 할 때이기에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어려울 것인지, 경제 사이클에 의해 순환적인 어려움인지가 중요한데 지금 어려워도 나중에 좋아지겠지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근거없는 낙관론일수도 있지만 증권업계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낙관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이 좋다.  
 
◇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가 이슈"
 
- 지난해 베이비부머들의 본격 은퇴가 시작되면서 저출산·고령화, 은퇴 관련 논의가 활발했다. 올해 최대 은퇴이슈로 부각될 만한 것은 무엇이라 보는가.
 
▲ 강연을 할 때 지금과 같은 저금리시대에는 종이를 주워서라도 한달에 50만원을 벌면 2억원 정도의 정기예금을 갖고 있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앞으로 100살까지 살아야 하니까 언제 무슨일이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여차하면 부부가 체면을 버리고 허드렛일이라도 해서 한푼이라도 벌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얘기할 때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듣는다. 지금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노후설계라고 하면 자금이 얼마 필요하냐가 중심이었는데 저는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무슨일을 하면서 살것인가가 앞으로 이슈가 될 것으로 본다.
 
특히 새정부 들어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해 있다. 최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평균 퇴직연령이 52.6세로 나왔다. 지금 베이비부머 세대 남자는 44%, 여자는 48%가 97세까지 사는 것으로 나왔다. 일단 100살까지 산다고 봐야 한다. 만약 52.6세에 퇴직하면 40년정도를 살아야 한다. 그동안 돈도 돈이지만 일없이 산다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돈이 되는 일이든 안되는 일이든 무슨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가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 퇴임을 결정한 계기는.
 
▲ 지난해 들어 우리 업계에서 30~40대 젊은 사람들도 명퇴를 많이 했다. 그걸 보면서 제 나이에 계속 있다는게 부담이었다. 또 지금까지 40년동안 자의에 의해 떠나서 다른 자리를 찾아왔다. 조금 아쉽더라도 1~2년 먼저 떠나게 되면 다음 자리를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다. 제 인생스케줄을 자의에 의해서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미리 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 인생 2막의 계획은.
 
▲ 새해부터는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와 투자교육연구소가 합쳐져서 미래에셋 은퇴연구소가 된다. 저는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 여의도에 미래와금융연구포럼을 만들어서 연구와 강의활동을 할 예정이다. '100세시대 개인의 생애설계와 자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회사는 그 일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 것인가' 이 2가지에 집중할 생각이다.
 
상반기에는 '생애설계와 자산관리연구회', '한일 리테일금융 연구회', 또 민간 비영리 조직에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NPO(민간비영리조직) 연구회' 이 3개 연구회를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서 토론을 하고 결과물을 내볼까 한다. 일본이 1998년에 NPO 촉진법을 만들어서 비영리법인을 쉽게 만들 수 있게 했다.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 생긴 NPO가 4만6000개 정도 되고, 그중에서 70% 정도는 흑자를 내고 있다고 한다. 그 사례를 연구해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뭔지, 우리나라에 NPO들이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 연구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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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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