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회계사나 세무사, 세무공무원 등 소위 세금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얘길 들어보면 요즘처럼 '세금'이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최근 복지확대와 그에 따른 재원대책으로 '세금'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인데요. 불황이 깊어지면서 벌이가 시원찮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어디에서 얼마나 더 걷어야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치권의 고민도 커보입니다.
이처럼 세금은 국가재정의 근간이 되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세금이 반드시 세수확보라는 재정적인 측면만 고려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주세의 경우 술 소비에 대한 세금으로 국가 세수입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지만 주류의 제조와 판매에 대한 면허, 주류 원료의 수급조절, 술을 빚을 수 있는 자격까지 관여하는 폭넓은 규제에 가깝습니다.
과거 특별소비세에서 2008년 이름을 바꿔 재탄생한 개별소비세도 세수확보보다는 규제 등 정책적인 측면이 더 크게 고려된 세금입니다.
개별소비세는 주로 소비행위가 제3자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외부불경제'에 대한 조정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수렵용 총포, 투전기, 오락용 사행기구부터 카지노 입장행위, 유흥음식행위까지 과세대상만 보더라도 어떤 세금인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휘발유, 경유 등 유류에 대해서도 리터당 수십원에서 수백원까지 개별소비세가 붙고, 지난해부터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대용량 가전제품에도 개별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죠.
개별소비세는 여기에다 과거 특별소비세 시절의 사치성 소비 억제 역할도 아직 하고 있는데요. 사치 소비를 줄인다는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사치의 기준에 대한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보석, 녹용, 로열젤리, 고급모피, 고급가구, 고급시계, 고급사진기, 고급융단 등 세법에 열거된 것만 과세하다보니 유사한 제품과의 형평성문제와 함께 어디까지를 '고급'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논란까지 끌어 안고 있는 그야말로 '불완전한' 세금이죠.
모피나 가구제조업계 등에서 해마다 정부에 개별소비세 폐지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섭니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고가가방'이 과세대상으로 하나 추가됐는데요. 이를 놓고 개별소비세의 사치성 소비억제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샤넬백'으로 통용되는 고가 가방에 세금을 매겨서 고가가방을 신처럼 모시는 안타까운 대한민국 중생들의 집단정신병이 치유된다면야 다행이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세금 때문에 가방은 더욱더 비싸지고, 고가가방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더 낮아진 중생들의 고가가방 신격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겁니다.
고환율에도 끄떡하지 않고 가격을 올려왔던 수입 고가가방 업체들은 벌써부터 세금만큼 또 가격올릴 것이라고 합니다.
세금이 사치품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어려운데다 모든 사치품에 과세하는 것 또한 어렵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이번에 고가가방을 과세대상으로 추가하면서도 고가 의류나 신발은 과세대상에서 제외했고, 가방 중에서도 바이올린 등 악기케이스와 골프백 등 스포츠용품가방은 과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랫도리 윗도리로 구분되는 의류는 과세가 너무 어렵고, 골프백 등은 고가에 해당하는 것이 극히 적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인데요. 이 경우 수백만원짜리 고가 의류와 골프백은 과세되지 않게 됩니다.
세금을 부과하기 쉬운 것은 과세대상으로 하고, 세금을 부과하기 어려운 것은 못 본 채 하는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과세편의주의적인 발상이지요.
고가가방에 세금을 매기는 '가방세'는 1784년부터 약 30여년간 영국에서 존재했던 '모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당시 영국 내각은 부자들에게서 손쉽게 세금을 걷기 위해 고민하다 부자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는 모자에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모자는 영국신사의 격식과 예의의 수단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한두개의 싼 모자만 소유하고 있는 반면, 부자들은 비싼 모자를 수집하듯 많이 가지고 있었죠.
지금은 비웃음의 역사가 됐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모자에 외에도 창문이 많으면 부자라고 해서 창문세도 부과했고, 벽이 넓은 큰 집에 살면 부자라며 벽지세도 부과했다죠.
가방세가 '된장녀', '된장남'으로 불리는 명품족에 경종을 울려준다면 다행이지만, 지금으로서는 후세들에게 모자세 못지 않은 비웃음을 사게 될까봐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