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스토리)제값 치르고도 싸게 샀다는 사람들

입력 : 2013-03-04 오후 4:15:39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일반적인 경제 이론이 먹혀들지 않을때가 참 많습니다.
 
공급이 많아진다고 해서 꼭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수요가 늘어나도 가격이 오르지 않을 때도 있죠. 과거 서울 강남 집값이 폭등할 때에는 정부 정책보다는 아파트 부녀회 아주머니들이 집값을 결정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다양한 원인이 얽혀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집을 거주하는 곳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지 아닐가 싶습니다.
 
특히 이런 비시장적인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은 이상한 행동을 유발하기도 하는데요. 바로 '다운계약서'입니다.
 
다운계약서는 실제 매매한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된 것 처럼 작성한 계약서를 말합니다.
 
제값을 치르고도 싸게 산 것처럼 계약서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입니다.
 
집을 살 때 지불했던 가격보다 팔 때 수중에 쥐는 돈이 더 크면 그 차익만큼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종의 이면계약을 통해 실제 팔아넘긴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요즘에는 실거래가격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니 거래가격을 낮춰서 외형상 양도차익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양도소득세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특히 집값이 비쌀수록 세금도 무겁고 양도차익도 대형화하기 때문에 유혹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그런데 계약이라는 것이 쌍방이 있는 것인데, 어떻게 다른 한쪽이 설득됐을까요? 집을 파는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는 사람입장에서는 제값을 치르고 집을 샀는데, 더 낮은 가격으로 계약서를 쓰기는 뭔가 억울하지 않을까요? 10억에 산 물건을 5억에 산 것처럼 계약서를 쓰자고 한다면 마음이 편하진 않을텐데 말이지요.
 
집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역시 '세금'입니다.
 
집을 살 때에는 매매가격의 2~4%(올해 6월말까지 1~2%)의 취득세를 부담해야 하는데, 계약서상의 금액이 낮으면 취득세도 낮아집니다. 집값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만원까지 될 수 있는 큰 돈입니다.
 
결과적으로 다운계약서는 매도자와 매수자가 서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입을 맞추는 순간 가능해지는 일로 고의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기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조세범처벌법상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로 조세를 포탈하거나 환급·공제받은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세액의 2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포탈세액이 3억원이 넘으면 3배, 5억원이 넘으면 그 이상의 벌금도 두들겨 맞을 수 있습니다.
 
거짓증빙이나 거짓문서의 작성, 이중장부 작성 및 장부의 허위작성 등이 모두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됩니다.
 
사실 이런 무서운 벌칙이 있기 때문에 다운계약서를 쓰는 일이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 과거 집값이 폭등할 시기마다 국세청이 다운계약서를 적발하기 위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실제 적발된 사례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필인지 인사청문회 때만 되면 다운계약서를 썼던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드러나니 참 놀랍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장관후보자 중에서 상당수 후보자들을 투기꾼으로 확인, 낙마시키는데 일조했던 다운계약서는 박근혜 정부의 첫 장관 후보자들도 작성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유정복 안정행정부 장관 후보자 등이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던 의혹을 받고 있고, 이 중 유 후보자는 다운계약을 시인하고 절약한(?) 세금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지난 대선 전에서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다운계약서도 논란이 돼 후보측이 직접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시행된 2006년 이전에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다운계약서가 뒤늦게 칼부림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은 기준시가대로 신고하거나 그보다 더 낮게 신고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보아도 다운계약서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현재도 고가주택 매매과정에서 여전히 다운계약서가 관행처럼 존재하는 것도 모두 탈세를 위함입니다. 집값이 비쌀수록 양도차익은 커지고, 양도소득세 부담이나 취득세 부담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다운계약서로 집을 산 사람은 당장의 취득세 부담은 줄였지만 다음에 그 집을 팔 때에는 양도차익이 더 커져서 더 큰 세금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수도 있습니다. 결국 팔 때 다시 다운계약서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수도 있습니다.
 
3월4일 오늘은 마흔일곱번째 '납세자의 날'입니다. 국민의 의무 중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의무인 납세를 피하기 위해 '관행'을 외치다가는 무한해지는 재정수요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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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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