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에 민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조직법 논란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최근 민주당을 향해 연일 퍼붓고 있는 비난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이같은 공세가 설득력이 없는게 아니다.
민주당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업무 가운데 종합유선방송(SO) 인허가권을 비롯해 유료방송 플랫폼 등의 방송정책과 규제권한을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에 그대로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연일 결기에 차서 마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심대하게 훼손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민주당 스스로가 말하듯이 MB정권의 방송장악, 언론장악은 극한을 달렸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현행 방통위 구조하에서 생긴 일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럿이 정책을 정하는 위원회 체제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장관 한 사람이 결정권을 갖는 구조라면 더욱 심각한 방송장악 행태가 벌어질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방송을 장악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MB가 보여줬듯이 지금 방통위 체제에서도 불가능할 게 없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초반 국정운영 행태로 보건대 본인이 필요하다고만 생각되면 '긴급조치' 같은 짓을 해서라도 방송을 휘어잡으려고 덤벼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문제는 법령이나 조직이 아니라 '朴의 의중'이라는 얘기다.
방송독립과 공정성은 중요한 가치지만 민주당은 지금 엉뚱한 곳에 이 가치를 들이밀고 있다.
지금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장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지상파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구조다. 새 정권이 전리품처럼 갖는 자리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공영방송 수장이 결정되도록 하는게 핵심적 요소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SO의 채널편성권과 방송 독립성의 상관관계가 100이라면 공영방송 사장선임 문제와 방송독립의 상관관계는 그 수백배, 수천배 이상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방송독립의 모든 가치가 온통 SO 편성권에 달려 있는 것처럼 상황을 이끌고 있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한둘이 아닌데도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는 소홀한 채 국민들이 보기에 무엇때문에 싸우는지도 의아한 이슈를 붙잡고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방송독립, 공정성 등의 단어로 이슈를 과대포장하고 있지만 언론계 종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는 별것도 아닌데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시비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 와중에 한숨이 절로 나는 일이 또 생겼다. 6일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조직법 합의를 위한 3가지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 요건 강화, 언론청문회 즉시 실시, MBC 김재철 사장의 비리에 대한 검찰 조사와 사퇴 등이다.
다시 말해 이들 3가지를 들어준다면 그간 그토록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방송독립 방지 장치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SO 채널편성권 미래부 이관 저지가 방송독립의 요체인 것처럼 강조하던 민주당의 그간 주장이 얼마나 솜털같이 가벼운 것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일이다.
이같은 민주당의 모습은 스스로의 판단에 움직이는게 아니라 배후의 특정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당을 조종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라도 민주당이 싸워야할 곳은 따로 있다.
일례로 전국민 개개인의 재산인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고령 노인들에게 연금을 준다는 새 정부의 정책은 사실상 전국민에 가까운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내가 애써 모은 내 재산을 왜 노인들에게 나눠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들은 어디서도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모르고 있지만 바로 이런 점들이 '정치인 안철수'에 국민이 관심을 갖는 이유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는 것을 진정성 있게 대변하라.' 이것이 현재 민주당이 갈 길이자 앞으로 '살 길'이다.
이호석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