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요즘 공정위가 뒤숭숭하다.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넘도록 위원장은 공석이고, 공정위가 보유한 대기업 거래내역 자료도 국세청에 넘길 판이다. 경제민주화가 핵심 국정과제라지만, 정작 공정위는 솜방망이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업무공백 장기화..내부 자료도 국세청에 넘겨야
5일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원장 공석 40일을 맞았다. 한만수 사태로 장관급 부처 중 인선이 가장 늦어 조직 개편과 주요 간부 임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난 3일 조원동 경제수석은 국세청의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공정위가 가진 대주주 거래내역을 국세청 등과 서로 공유토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공정위가 보유·조사중인 기업 영업에 대한 사항은 외부유출이 금지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솜방망이 평가를 받은 공정위 대신 국세청에 힘을 실어 준 셈이다. 이로 인해 경제민주화의 중심축이 공정위에서 국세청으로 옮겨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공정위, 안팎에서 문제..진작 제대로 했어야
공정위는 대기업을 규제하는 경제검찰로 불렸지만, 역대 위원장은 대부분 경쟁법을 잘 모르는 경제관료나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는 교수 출신이 임명됐다. 자연히 공정위의 업무 전문성과 연속성은 떨어져갔다.
공정위 직원들 역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로펌이나 기업의 고문·이사직으로 옮기는 바람에 전관예우 논란을 불렀다.
이런 것들은 결국 공정위가 대기업에 솜방망이 처벌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안팎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실제로 공정위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2012년도 통계연보'에서는, 전년에 비해 공정위의 사건처리 수는 37% 늘었지만 과징금 부과액은 오히려 15%나 준 것으로 집계됐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공정위는 대기업과 권력에 편향됐다"며 "불공정거래로 피해를 본 하도급업체나 납품업체가 공정위 대신 시민단체를 찾아와 하소연할 정도"라고 비판했다.
◇시급한 위원장 인선, 경제민주화 물밑 작업해야
경제민주화를 위해 최근 공정위에 대기업 전담 조사팀인 '조사국'이 8년 만에 신설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위원장이 없어 직원 임명까지 미뤄지는 마당인데 조직개편이 당장 가능하겠냐"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따라서 조직의 중심을 잡을 위원장 임명이 시급한 것으로 떠올랐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업무추진 문제를 떠나 일단 조직원 사기의 문제"라며 "노대래 후보자가 정식 임명돼도 업무가 자리잡으려면 5월은 넘겨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원장 임명이 늦더라도 공정위가 경제민주화 추진을 위한 물밑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경제적 약자·소비자 권익보호, 공정거래법·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국정과제로 발표했지만 공정위에서 아무것도 추진한 게 없다"며 "위원장이 없다면 임시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라도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됐고 한만수 후보자 사태를 겪은 만큼 공정위가 얼마나 중요한 지 국민이 다 알게 됐다"며 "솜방망이라는 말을 안 들으려면 공정위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