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새 정부의 검찰총장 인선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3월.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당시 있었던 어이없는 '정치권과의 소통' 비화 한자락을 풀어놨다.
이 간부는 "3월에 새 정부 검찰총장 인선이 진행되고 있을때 청와대 인사담당자에게 새누리당 PK(부산경남)출신 국회의원이 전화 한 통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화를 걸어온 의원이 새 총장으로 김진태는 안 된다며 그 이유로 '지난 정부에서 검찰 인사는 TK(대구경북)출신이 다 해먹었지 않았느냐’고 말했다더라"고 전했다.
이어 "그 의원은 이번에도 TK출신 김진태가 되면 곤란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면서 "이미 청와대 내부기류는 채동욱 당시 서울고검장으로 기운상태였지만 전화를 받은 청와대 관계자는 우선 '알았다'고 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3월15일, 채 고검장이 새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검찰을 가만두지 못한 정권들
정치권에서 검찰총장에 누가 선임될지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검찰이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강력한 통치기구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참여 정부, DJ까지 모두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면서 "검찰이 지금처럼 '권력의 시녀화'가 된 것에 대해 어떤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정권의 주된 견제 수단은 인사였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신광옥 민정수석을 법무부 차관으로 부임시켰고 김학재 민정수석을 대검 차장으로 옮겨 검찰을 집중 감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재임 기간 내내 법무부와 검찰 주요 요직을 TK인사, 고려대 라인으로 채우면서 검찰 조직을 장악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검찰은 정권에 입맛에 맞는 수사만 한다는 공정성·형평성 논란에 휩싸였고 잇따른 추문에도 휘말리면서 개혁 1순위 기관으로 꼽히고 말았다.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검찰 내부에서는 "강금실·천정배 법무부장관 기용으로 검찰에 부담을 줬다"는 의견과 "검찰을 사실상 방치해두었기 때문에 마음껏 수사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2005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수사팀은 구속수사의견을 냈으나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로 진행됐다.
당시 수사팀 수장이었던 황교안 현 법무부장관은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잇따라 누락됐고, 정권이 바뀌자 곧바로 검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 검찰과 정권의 끊임없는 줄다리기
검찰을 이용하려는 정권이 검찰을 '순치'시키기 위해 꺼내드는 카드는 인사권이었다. 그리고 검찰의 중요한 이해가 걸린 각종 제도 개선방안을 들고 나와 검찰을 '괴롭게' 만들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꼿꼿하던 검사장이 머리를 조아려야 할 때가 검경 수사권조정, 형사소송법 등 검찰 근간에 대해 건들 때"라면서 "정권이 검찰을 손봐야겠다 싶으면 검찰에게 민감한 것들을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검찰의 강력한 힘은 '기소독점주의'와 강력한 수사권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기소독점주의는 검찰이 모든 기소를 도맡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
검찰은 또 경찰이 수사하는 사건 대부분을 지휘하고, 직접 수사권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기소권만 갖고 수사권은 없는 미국과 영국의 검찰이나 검찰심사회와 같은 기구를 둬 검찰의 기소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권한이다.
결국 검찰은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는 동시에, 이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의 이익에 부합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공생의 길을 택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정권 초기에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에 전력을 다했다가 정권 말기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면 측근 수사에 돌입해 차기 정권에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는 식의 '무력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시민에 의해 견제 받는 일본 검찰..한국은?
우리나라가 초기 사법제도의 근간 대부분을 일본에서 가져온 까닭에 우리나라 검찰 역시 일본과 같은 국가소추주의(일반 시민에게 기소의 권한을 주지 않고 국가만이 기소 권한을 갖는 것)과 기소편의주의(검사에게 기소·불기소의 재량을 인정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검찰은 시민에 의해 실질적으로 견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이 있다.
일본은 시민들로 이뤄진 검찰심사회가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부당할 경우 강제로 기소할 수 있도록 2009년 5월 개정된 규정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1월 검찰심사회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일본 정치 실세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를 강제 기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2심에서 오자와 전 대표는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이 시민에 의해 견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본 사회에 알려준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일본과 검찰심사회와 비슷한 검찰시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기소 권고만 할 수 있고 구속력이 없으며 위원회 소집 여부도 검사가 결정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울러 피고인과 참고인 등을 불러 조사할 권한 역시 없다.
반면, 일본은 검찰심사회가 무력해지지 않도록 위원 선정부터 엄격함을 기하고 심사회가 직권으로 심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위원과 전문지식 제공자 등에게 충분한 여비 등을 제공해 운영해나가고 있다.
◇ 검찰, '견제'받아야 '독립'도 가능
채동욱 검찰총장 선임 당시 처음으로 구성된 검찰총장추천위원회는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외부인사를 포함한 9명의 위원(당연직 위원 5명, 비당연직 위원 4명)으로 구성된 추천위는 당초 박근혜 정권이 전략적으로 '민다'는 소문이 돌았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탈락시키고 당시 채 고검장과 김진태 전 대검 차장,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을 추천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무부가 특정인을 총장 후보로 추천할 것을 은연중에 추천위에 강요한 것이 추천위의 반감을 샀고, 추천위가 거수기 노릇을 하는데 불과할 것이라는 언론의 예상에 부담을 가져 이러한 추천이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검 중수부장과 서울 고검장을 지내고 지난 2일에는 채 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기도 한 박영수 변호사는 "법무부가 쓸데없는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추천 대상자들에 대한 자료를 추천위에 건네고 추천 과정을 전부 추천위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천위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시민의 작은 참여만으로도 검찰 조직의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추천위의 경우 대표적인 견제기구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특정 후보를 총장으로 추천하려는 정권의 압력을 피하는 도구로 작동해 검찰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들로부터 받는 견제는 정권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검찰이 독립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검찰이 보호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검찰이 견제받아야 할 주체는 대통령이나 정권 관계자가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박 변호사는 "검찰의 힘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 비꼬는 말이다"면서 "강자에게 약한 검찰이 약자에게는 강했다. 배려와 소신 있는 검찰 개개인들이 서로 견제하며 사명감 있게 일해야 검찰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채 총장은 청문회 과정에서 앞으로 검찰권 견제를 위해 시민들을 참여시킬 방안이라면서 검찰시민위원회의 권한을 강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도 지난 5일 업무보고에서 비리검사 등의 수사과정에서 '제식구 감싸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수사사항을 검찰시민위원회로부터 심의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 검사는 향후 검찰개혁방안에 대해 "검찰 개혁은 비단 검찰 뿐 아니라 정부의 의지와 시민의 합의, 검찰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모두 어우러져야 한다"면서 "우리는 각오가 되어 있으니 앞으로 어떤 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개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