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염현석기자]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 캐나다 등지에서 불고 있는 셰일가스 열풍이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는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셰일가스 기반의 저가 석유화학 제품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셰일가스는 천연가스 시세보다 30% 저렴한데다(운송비 포함) 전 세계에서 250년 동안 사용 가능한 풍부한 매장량 등이 강점이다.
◇여수 산업공단에 위치한 국내 석유화학 공장 전경
10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염화비닐수지(PVC) 등 범용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최근 중국과 미국의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면서 완연한 회복 추세를 보이고 있다.
2월 PE와 PP 판매가격을 지난해 11월과 비교하면 각각 1225달러에서 1370달러, 1425달러에서 1550달러로 톤(t)당 각각 100달러 정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t당 900달러였던 PVC 판매가격도 1000달러를 회복하는 등 판매가격이 상승 전환됐다.
이런 추세와는 달리 석유화학 업계는 미국과 중동에서 원가 대비 원유기반 제품보다 저렴한 가스기반 석유화학설비 증가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국내 석유화학 기업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범용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미국과 카타르 등 중동지역에서 셰일가스와 천연가스에서 저렴한 에틸렌을 만드는 에탄 크래커 설비 증설을 통해 PE, PP, PVC 등과 같은 범용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제품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어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세계 에틸렌, 프로필렌 증설투자에서 가스와 석탄 비중 크게 높아지고 있다(자료제공=LG경제연구원)
에틸렌은 PE나 PVC와 같은 합성수지에 필요한 대표적인 화학원료로, 셰일가스나 천연가스를 이용하면 에틸렌 제조원가는 t당 600달러로 원유를 이용해 만든 에틸렌 단가 1200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완성 제품의 가격차이는 1000달러인 원유기반 PVC 기준으로 30~40% 가령 저렴하다.
더구나 중국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 수출량의 7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동과 미국의 제품들은 운송거리 등을 감안해 유럽지역에 주로 수출됐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위기가 불거진 지난 2011년 말부터 유럽의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미국과 중동의 석유화학제품은 중국으로 집중 유입됐다.
그 결과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의 중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지난해 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은 '반토막'났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 1위이자 가장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LG화학(051910)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30%나 급감하는 등 역풍을 피할 수 없었다.
유기돈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셰일가스 생산이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석유화학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셰일가스 기반 에탄 크래커 설비 확대가 국내 설비에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동과 중국의 석유화학 기업들이 지난 10년 동안 초대형 신규 설비를 다수 가동해 규모 면에서 이미 한국 기업을 크게 앞질렀다"며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에게는 기존 범용 석유화학사업의 수익력 약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새로운 성장전략 모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원유에서 천연가스로 원료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PVC가 아시아로 유입되면서 범용제품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셰일가스는 경쟁력은 중동에서 나오는 에탄과 비슷해 운임에 감가상각을 감안했을 때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같은 범용제품이라도 국산 제품들의 품질이 우수해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 기업들은 고흡수성수지(SAP), 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엘라스토머 등 고부가 특화제품의 비중을 늘려 경쟁력 확보할 것"이라며 "범용제품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가절감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