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계에 사다리까지..아파트 사전점검 '매섭네'

입주자 준비 모임에 인근 단지 비교까지

입력 : 2013-04-10 오후 5:55:03
[뉴스토마토 최봄이기자] 레이저 줄자, 손전등에 사다리와 쇠구슬까지..
 
아파트 사전점검일에 새 아파트를 둘러보는 입주 예정자들이 준비해 온 것들이다.
 
아파트 하자를 가려내는 입주자들의 눈썰미가 날카로워지면서 사전점검 풍경도 바뀌고 있다. 입주 예정자 커뮤니티에는 하자보수 체크리스트와 사전점검 시 행동요령 등 체계적인 매뉴얼이 올라오고 인근 아파트 사전점검을 다녀온 후기들도 속속 소개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 예정자들은 지난달 24일 총회를 열고 사전점검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곳곳에 숨어 있어 지나치기 쉬운 하자 유형들이 소개됐고 대동하는 건설사 직원들의 설명 내용을 녹취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당부도 이어졌다.
 
사전점검은 입주자가 살 집의 품질을 미리 점검해 하자보수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로, 사전점검 후 입주자의 동의를 받아야 준공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완성된 아파트를 미리 둘러보는 기간으로 인식됐으나 최근에는 전문가 수준으로 사전점검을 준비하는 입주자들이 많다.
  
◇한 입주 예정자 모임의 사전점검 체크리스트
 
사전 점검 때 최대한 많은 하자를 발견해야 손해가 없다는 인식에서다. 현행 주택법에서는 하자의 유형을 세분화해 입주 후 10년까지 건설사가 하자 보수를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입주 후 발견한 하자는 책임 소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주 예정자들이 공유하는 사전점검 매뉴얼을 보면 욕실 문을 여닫을 때 슬리퍼가 걸리거나 최대 수압으로 물을 틀었을 때 세면대 밖으로 물이 튀는 현상이 발견되는 경우에도 보수를 신청할 수 있다. 모든 서랍과 문은 2~3번씩 열고 닫아봐야 하며 벽 곳곳에 갈라진 틈이나 누수의 흔적, 흠집을 땜질(터치업)한 흔적 등도 확인 대상이다.
 
사전점검 대비 모임에 참석한 한 입주 예정자는 "고급 아파트에 살기 위해 고분양가를 부담했는데 벽지가 뜯기고 창틀이 깨져 있다면 정말 화가날 것 같다"며 "사전점검은 아파트가 지불한 비용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때문에 사전점검 시 입주자와 건설사가 하자의 기준을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싱크대 등 자재가 견본주택만큼 고급스럽지 못하다는 불만이나 계약 당시 영업직원이 설명한 것과 다르다는 불만들도 줄곧 제기되는데, 이는 사실 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 갈등 해결이 원만하지 않다.
 
입주자들의 달라진 눈높이를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파트 사전점검을 담당하는 분양 관계자는 "현재 아파트 가치가 분양가보다 높다면 입주자들도 덜 예민할 것"이라며 "분양시장을 비롯한 전반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하자보수 문제로 입주자와 시공사 간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하자보수 관련 소송을 담당 변호사는 "부동산 경기도 좋지 않은데 빚까지 내서 장만한 새 집에 하자가 발생하면 실망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소송을 통해 계약을 해지하거나 합의를 통해 잔금을 줄이는 선에서 분쟁을 조절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최봄이 기자
최봄이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