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기술과 인간 사이의 '화학반응'을 꿈꾸다

극단 거미의 연극 <알.유.알.(R.U.R.)>

입력 : 2013-04-21 오후 4:57:5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작가, 사후에도 여전히 체코에서 국민작가로 칭송받는 작가. 바로 카렐 차펙의 이야기다.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인 <알.유.알.>은 휴머니즘적 시각이 두드러지는 카렐 차펙의 대표작 중 하나다. 동시대의 눈으로 바라 보면 다소 단순한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1920년에 기계시대의 미래에 대한 예언과 경고를 담았다는 점, SF장르의 원조 격으로 여겨지는 희곡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R.U.R.’은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의 약자로, 작품의 배경인 로봇 공장의 이름이다. 인간에 복종했던 로봇들이 자신의 우월성을 자각하고 반란을 일으킨다는 비극적 내용을 담고 있다. 최후의 인류인 로봇 연구진들은 로봇을 만든 로섬 박사의 로봇 생산 비법이 적힌 서류를 들고 로봇들과 타협하려 한다. 그러나 도민의 아내 헬레나가 이 문서를 없애버리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로봇의 반란을 일으켜 세계를 지배한다는 줄거리를 통해 비인간화되어 가는 기계문명을 비판하는 것이 이 작품의 집필의도다.
 
 
극단 거미는 이번 연극제를 통해 차펙의 <알.유.알.>을 두번째로 무대화했다. 사건을 시간의 흐름 순서대로 배치했던 지난 1월의 공연(사진)과 달리 이번에는 시간의 역순으로 사건을 구성하는 식으로 극을 구성했다. 무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삼면의 거대 스크린 앞에 펼쳐진 흰색 무대로 이곳은 로봇을 연구·개발하는 유니버설 연구소로 상정된다. 다른 하나는 무대와 관객석이 맞닿아 있는 쪽인데 이곳은 극 줄거리 상의 야외 공간으로 쓰이거나 줄거리와는 거리가 있는 상징적인 인서트 장면을 위해 활용된다. 마지막 한 공간은 스크린 뒷편으로, 관객은 이곳에서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반투명막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1월의 작품이 인간과 로봇의 전면 충돌로 마무리되며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강하게 담았다면, 이번 서울연극제 공연에서는 인류 멸망부터 로봇의 발명까지 플래시백으로 사건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로봇을 만든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었나’를 상기시킨다. 제작진은 극 구성의 변화를 통해 <알.유.알.>을 ‘지금, 여기’에서 무대화하는 이유를 찾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연의 경우가 기계문명에 대해 사색해볼 여지를 좀더 남긴 작품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극 구성 변경으로 인해 손해 본 지점들이 적지 않다. 일단 공연의 발단부가 이미 인류 멸망 이후이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물론 모든 극 형식이 관객의 몰입도를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시대 연극 중에는 무대와 적당한 거리 두기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해당 사안을 새롭게 바라보게 유도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기계문명 맹신에 따른 인류 멸망’이라는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차근히 분석해 나가려는 학구적인 태도를 옹호하기에는 그 분석 대상이 흥미롭지 않다는 게 문제다. 지금은 로봇이라는 신 기술이 태동하던 1920년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 문명이 고도화된 이 시대에 거의 100년 전의 논리로 맞서는 것은 다소 원론적인 문제제기로 비춰질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왜 이 공연을 하는가의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극은 예상되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어 흥미가 다소 떨어진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인서트 장면 중 원 관념과 보조 관념 간 유사성이 약한 상태에서 비유나 상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줄거리와는 별개로 이 작품에서는 인서트 장면을 넣어 현실 속 전쟁이나 대량살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한다. 앞서 언급했듯, 전체적인 줄거리는 플래시백을 통해 과학기술 개발에 대한 본래의 순수한 목적을 찾아가는 식으로 구성되는데 반해 인서트 장면에서는 기술문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비유를 구사한다.
 
그런데 이 경고의 메시지가 다소 피상적으로 다뤄졌다. 배우들은 각종 스포츠 경기의 동작을 취하며 숫자를 외치는데, 이 숫자는 전세계적으로 큰 전쟁이 일어난 연도를 가리킨다. 이때 무대 뒤 스크린에는 전쟁에 관한 영상이 비친다. 화면 속 탱크, 무대 위 장난감 탱크, 배우의 다양한 스포츠 동작 등에서 호전적인 전쟁 이미지만 너무 뚜렷해져 막상 로봇 개발의 폐해에 대한 사색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 같은 설정은 애초 극 구성의 변경 의도와는 상충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서트 장면이 지나치게 코믹하게 다뤄지면서 연극의 쉼표 역할에 그치고 만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과 아쉬운 대목은 모두 영상에서 나왔다. 초반부와 말미에 사용된 영상의 경우, 영상이라는 미디어와 배우의 연기 간 상호작용을 십분 살려 기대감을 높였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달리면 화면에는 너른 들판을 지나 섬의 끄트머리 바다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로봇 갈라테이아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극 말미에 인간 헬레나가 다시 한번 같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인간과 로봇의 공존에 대한 희망과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른 운명을 복합적으로 암시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의 모습도 영상에 담긴다. 극이 시작되기 전 스크린에 비춰지던 갈라테이아와 피그말리온 그림은 나중에 스크린 뒤 헬레나의 남편인 도민과 도민이 만든 로봇 갈라테이아의 실연 연기로 다시 한번 재현된다. 이 같은 영상 활용은 모두 극의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대목들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의 영상은 설명적인 요소들에 그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배우들은 차례로 무대 한쪽에 놓인 테이블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이 내용은 대형 스크린 화면에 그대로 투사된다. 대포가 달린 군함선과 로봇 설계도 등이 배우의 손에 의해 실시간으로 그려지고 투사되지만 색다른 의미 없이 그저 극의 줄거리에 따라 비춰지며, 극 전체로 봤을 때 영상 사용의 대부분이 이 같은 식으로 이뤄진다. 영상 미디어를 주무기로 활용한 공연이기에 더욱 아쉽다. 카렐 차펙의 <알.유.알.> 속 캐릭터처럼, 무대 위 기술과 인간의 '화학반응'은 아직 요원한 것일까.
 
작 카렐 차펙, 연출·영상 김제민, 출연 레지나, 조판수, 황도연, 이준규, 백종승, 김보라, 김동민, 심우섭, 드라마투르그 오민아, 음악 김병제, 무대 봉하일, 조명 김건영, 안무 양은숙, 2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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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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