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여론의 기대를 모았던 경제민주화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재계의 반발과 여야의 갑론을박은 예상된 것인데 비해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그나마 정부에 힘이 실리는 출범초 강한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20여년 염원이 모아진 경제민주화 정책이 물거품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공약한 경제민주화 정책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적 약자에 확실하게 도움 드리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동시에 내놓은 정책 방향이 ▲골목상권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의 획기적 개선 ▲비정규직 차별해소 ▲조세와 재정 정책의 소득 재분배제고 효과 제고 등이다.
“대기업 집단의 장점은 살리고, 잘못된 점은 반드시 바로잡겠다”면서 ▲대기업 경영자의 불법행위와 총수일가 사익편취행위 엄격 대처 ▲기업지배구조개선 개선 ▲금산분리 강화를 공약한 점도 눈에 띈다.
물론 “국민적 공감대가 미흡한 정책은 단계적 추진하겠다"고 미리 선도 그어놨지만 ‘공정성을 높이는 경제민주화’를 공약의 맨 앞줄에 제시한 건 분명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상징성이 큰 김종인 교수를 대선캠프에 영입하는 등 야당 보다 발 빠른 행보를 보여 이목을 끌었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공약하면서 “우리 경제는 그동안 효율성을 강조한 반면, 공정성이 상대적으로 간과됐다"고 현 상황도 비교적 정확히 짚었다.
◇대통령 발언 따라 부침 겪은 ‘경제민주화’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뒤로 경제민주화 정책은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먼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2월 21일 국정운영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경제민주화’를 쏙 빼놓아 논란을 일으켰다.
인수위에 참여한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부랴부랴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가 경제민주화 보다 더 광의의 개념”이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을 잠재우진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나흘 뒤 열린 정부 출범식에선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가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상황은 또 한번 반전했다. 임시국회가 열리던 지난 4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법안 중 (대선)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해 다시금 논란을 야기했고 이틀 뒤엔 “경제민주화는 어느 한쪽을 누르고 옥죄는 게 아니다”라고 발언해 재계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실제 재계 엄살에 더해 경제민주화를 반대한 일부 의원, 경제매체 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제민주화 법안은 4월 국회에서 3개 정도 통과되는 데 그쳤다.
◇경제민주화, 후퇴 보단 철학부재가 더 큰 문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경제민주화 정책은 대다수가 입법 사안이기 때문에 키는 결국 국회가 쥐고 있다.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국회 조력이 필수적이고 정책 실행을 위해서는 관련법의 국회통과가 먼저인 만큼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은 후순위에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몇몇 발언을 여당 지도부가 ‘속도 조절’로 해석하면서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에 가속도가 붙은 양상이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놓고 진행자와 토론하다 “절도행위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 사형을 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문제의 본질은 결국 경제민주화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 부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보다 발 빠르게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지만 뒤이은 오락가락 행보로 진정성을 의심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약을 딱히 뒤집은 건 아니지만 강력한 추진 의지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보니 경제민주화는 결국 표를 얻기 위해 급하게 채택한 구호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랜 기간 경제민주화 입법화 운동을 펼쳐온 측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경제민주화 정책이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국회가 입법 활동을 하는 데 대통령 발언이 번번이 제동장치로 쓰이고 있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성진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존재이유, 즉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소명을 보다 잘 실천할 것 같은 믿음을 얻었기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