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싸움..그래도 "세상엔 형과 나 뿐"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에게 들어본 '형제의 난'과 '금호'

입력 : 2013-06-18 오후 9:08:54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경영진들과 함께 현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사진제공=금호석화)
 
[뉴스토마토 김기성·김영택기자] 소탈했다. 대기업 총수라기보다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에 가까웠다. 회장 비서실로부터 사전에 들은 정보는 예의상 전해진 가식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됐다.
 
지난 13일 저녁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만났다. 첫 인상을 새기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나왔다. 왜소한 체구, 깔끔한 노타이 정장에, 사투리로 전해지는 첫 인사. 부조화 속 조화였다. 술이 몇 순배 도는 사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던 거리감은 사라졌다. 그렇게 벽은 허물어졌다.
 
중간 중간 그와 그를 수행해 자리에 함께 한 임원들 간 대화가 흥미로웠다. 기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다. 자리를 마련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자 그가 대뜸 옆에 있던 홍보팀장을 쳐다본다.
 
“팀장이 하랑께 해야죠잉. 아니 나를 막 부려요.”
“회장님이 우리 회사 홍보팀장이십니다. 그래서 저희가 편하게 일을 하고 있죠.”
“거 봐요잉. 나를 팀장으로 강등하고. (이런데) 어떻게 말을 안 들어요?”
 
홍보팀장의 스스럼없는 도발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즐기는 듯 보였다.
 
지켜보던 기자가 “대기업 총수답지 않아 부담이 덜하다”고 하자 그는 “대기업은 무슨. 중소기업이죠잉. 그것도 팀장”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또 다시 술을 권한다. 취기로 시작해 취기로 마무리한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금호석화, 합성고무 경쟁력 앞세워 올해 매출 목표 5.4조 제시
 
스스로 중소기업이라고 말하는 금호석유(011780)화학의 올해 목표치는 어떨까.
 
박찬구 회장은 “올해 5조40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4조8727억원) 기준 10.8% 상향 조정된 수치다. 글로벌 경기 부진, 업황 특성상 의존도가 큰 중국의 경기 둔화세가 여전함에도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금호석화 여수고무제2공장 야경.(사진제공=금호석화)
 
이는 부동의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합성고무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금호석화는 전 세계 합성고무 시장의 10%를 점유하고 있다. 이중 범용제품인 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BR)는 2012년 기준 세계시장 9%를 점유하며 세계 1위를 지켰고, 부타디엔고무(BR)는 세계 3위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금호석화는 이에 만족치 않고, 지난해 차세대 합성고무로 불리는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 생산량 6만톤을 증설했다. 합성고무에 있어서만큼은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품질에 대한 높은 경쟁력은 여타 석유화학 기업들의 그늘을 비켜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 고무는 2012년 EU를 시작으로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 도입된 타이어 라벨링 제도가 요구하는 친환경 타이어의 핵심 속성을 제공하는 차세대 합성고무다. 회전 저항력이 높고 젖은 노면에서도 접지력이 뛰어나다. 때문에 SSBR 시장은 연평균 6% 성장을 거듭해 오는 2020년에는 약 7조5000억원 규모의 단일 시장을 조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 회장은 “합성고무는 철과 함께 모든 산업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라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시장 변화를 선도할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경쟁력이 업황을 이긴다'는 평소 그의 경영지론이 짙게 깔려 있다.
 
◇지난 4월8일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왼쪽 두번째)과 임성규 영업본부장(왼쪽 첫번째)이 터키 앙카라에 위치한 페트라스 타이어 본사를 방문해 무스타파 오샤인(Mustafa Ozsan) 회장과 시장 동향과 향후 협력관계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사진제공=금호석화)
 
다음 수순은 역시 시장 개척이었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다팔 시장 확보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사업의 안정성을 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박 회장이 주목한 시장은 유럽의 중국으로 불리는 터키였다.
 
박 회장은 ”터키는 ‘유럽의 중국’으로, 유럽권역 단일 국가 최대 규모의 합성수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며 터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금호석화는 올해 터키를 유럽과 중동을 겨냥한 핵심 전략지역으로 격상시키는 한편 터키에 대한 수출 목표를 전년보다 130% 상향 조정했다.
 
특히 지난달 한-터키 FTA에 따른 관세 철폐가 시행되면서 EU, 인도 등 주요국들과의 가격 경쟁력이 가능해지면서 터키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것도 금호석화로선 호재. 박 회장은 지난 4월 임성규 영업본부장 등 임직원들과 함께 일주일 일정으로 터키와 이스라엘의 주요 고객사들을 차례로 방문, 협력 관계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그의 목표는 비단 합성고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2020년 계열사들과 함께 매출 20조원의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이 5조8837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4배 가까운 폭발적 성장세를 이뤄내겠다는 얘기다.
 
금호석화는 현재 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켐, 금호미쓰이화학, 금호개발상사, 금호티앤엘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금호그룹에서 사실상 분리, 독자 생존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격랑에 휘말리면서 부침도 겪었지만, 그 부침 속에서도 금호석화는 그룹으로서의 뼈대를 갖춰가고 있었다. 중심에는 영업팀장이자 홍보팀장인 박 회장이 있었다.
 
◇26년간 노사 무분규..현장 소주잔의 힘!
 
금호석화의 또 다른 힘은 노사 관계에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 지난 1987년 노조가 설립된 이후 26년간 내리 무분규를 이어오고 있다. 이는 경영의 불확실성을 제거함과 동시에 근로자에게도 회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단초가 됐다.
 
어려움도 있었다. 특히 지난 2010년부터 3년간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할 정도로 회사 사정이 좋질 못했다. 금호그룹 전체가 고난을 겪던 시기다. 노사는 이중 2년간 임금 동결에 전격 합의했다. 상호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자연스레 2011년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디딤돌이 됐다. 오늘날의 금호석화로 일어선 데는 바로 노사 간의 믿음이 있었다는 평가다.
 
◇박찬구 회장은 매분기 1박2일 일정으로 여수, 울산 사업장을 방문해 근로자들과 격없는 대화를 나눈다. 이를 통해 노사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사진제공=금호석화)
 
박 회장의 솔직함과 소탈함은 직원들을 대하는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여수와 울산 사업장을 찾아 노조 간부들과 테이블을 마주 한다. 생산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엇보다 꾸밈없이 사측의 입장을 직접 설명한다. 필요할 때는 소주잔도 받아든다. 말이 통하는 사람 앞에 노조는 강경함을 내려놓았다.
 
주위 전언에 따르면 박 회장은 평소 ‘홀로 행보’를 좋아한다고 한다. 혼자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당연히 회장 비서실은 그때마다 애가 탄다. 한때 몸서리를 칠 정도였지만 이제 이마저도 문화가 됐다. 또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경우도 거의 없을 정도다. “체구가 작아 이코노미로도 충분하다”는 게 비서실에 내려진 그의 답이었다.
 
◇증오가 아닌 애증..형제싸움 그 끝은 어디?
 
취기가 오르자 본론을 꺼내들었다. 세간이 가장 궁금해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대면한 기자는 솔직히 사업 얘기보다 ‘형’과의 얘기를 꺼내들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역시 술이 도움이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삼구 회장과의 갈등 푸실 생각은 없으세요?”
“…….”
 
어색한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질 않았다. 그가 자세를 바로 고쳐 잡더니 목소리 톤을 약간 올린다. “형이 그것만은 안 했어야 했는데….” 채 말을 잇지 못한다.
 
이내 돌직구를 던졌다. 사실 인터뷰를 전제하지 않은 사석이라 가능했다.
 
“일반 국민은 두 분 간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형제가 돈(경영권)을 놓고 다투는 모습에 실망한 것 같습니다. 법정으로까지 싸움이 이어지는 것은 분명 경영에도 부담일 텐데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 그랬다. 우리나라 재벌들 치고 가족 간에 돈을 두고 싸우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다. 삼성이 그랬고, 현대가 그랬고, 두산이 그랬다. 금호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현재 금호그룹과 금호석화는 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따로따로 움직이는 기형적인 형태다.
 
박 회장이 말을 받는다. “검찰에까지만 하지 않았어도 이리는 안 됐어요.” 앞선 말과 같은 맥락이다. 박 회장은 현재 횡령 및 배임 등의 혐의로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가 조작을 한 혐의까지 더하면 규모는 300여억원으로 늘어난다. 박 회장은 검찰 수사의 배경에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필 그는 기자와 만나기로 한 이날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선영을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이틀 후인 15일은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29주기 기일이었다. 박 회장은 이날 형의 집을 찾는다. 이틀 후 제사에서 마주할 형에 대한 얘기였던 셈이다.
 
박 회장은 형에 대해 자존심 강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때로는 그 자존심이 지나쳐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트렸다고 생각했다. 형제 간의 연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금호석화를 들고 나온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2006년 12월 대우건설(047040)을 인수한 후 2008년 1월 대한통운까지 인수합병하면서 13개월 만에 10조원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어요. 3년짜리 회사채도 발행했지만 연장이 안 됐어요. 2008년 말엔 기업어음이 5000억원대에 달하는 등 점점 부채가 늘어 위험신호가 여러 곳에서 발생했어요. 더 큰 문제는 2009년 6월 대우건설 풋백옵션이 돌아오면서부터입니다. 시장이 알아차린 거죠.”
 
이때부터 형제 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형은 금호석화를 팔아서라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살리겠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동생은 금호그룹은 항공 중심의 본연으로 돌아가고 알짜배기인 석화는 죽여서는 안 된다는 반론으로 맞섰다. 좁게는 금호석화의 생존 여부를 두고, 크게는 그룹의 회생 방안을 두고 두 사람 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던 것이다.
 
박 회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보다 못해 형하고 독대를 했어요. 형은 금호석화 희생을 통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손실을 메우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현금이 풍부했던 대한통운 매각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형이 배팅(인수합병)한 것에 대한 (경영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되짚어 보더라도 박삼구 회장과 그의 아들 박세창 현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대한통운 인수를 주도하면서 재계에서는 인수합병의 귀재로까지 평가됐다. 때문에 어렵사리 품에 안은 대한통운을 다시 시장을 내놓는다는 것은 경영력의 치명타로 비칠 수 있었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동생 말대로 형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시장에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인수합병의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금호석화만이 조기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을 뿐 금호그룹의 지주사인 금호산업은 여전히 워크아웃 단계며,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 역시 자율협약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 간 화해는 요원할까. 박찬구 회장은 “형이랑 나와의 화해는 주변정리부터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대상을 지목하진 않았다. 다만 형제 간 싸움을 자신들 이해로 치부하는 세력이 있다고만 배석한 이들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양측 모두의 주변인지, 한 사람의 주변인지는 여전히 확인할 길이 없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고들 하지만 형제라는 천륜을 끊기는 어려워 보였다. 60년 넘게 함께 한 형제이자, 박 회장 스스로도 “형제라고는 이 세상에서 이제 형과 나 뿐”이라고 말했다. 증오가 아닌 분명 애증이었다. 물론 뒤를 잇는 말은 갈등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먼저 (사과)하진 않을 거예요. 한 형제임에도 우린 너무나 달라요."
 
늦은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 박 회장이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형은 자존심이 강합니다. 내가 누구보다 형을 잘 알아요. (화해를 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법정에서 어느 정도 윤곽도 나와야 하고. 분명한 점은 키는 형이 쥐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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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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