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해운 시황이 장치 침체에 빠진 가운데 고효율 선박에 대한 신조 수요는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해운업의 빠른 회복과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해 해양·선박금융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선박금융공사법 및 해양금융공사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연료비 부담이 늘고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고효율 선박이 향후 해운·조선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조선업 침체로 선가가 하락한 지금이 고효율 선박을 확보할 수 있는 적기이며, 이를 위해 해양·선박금융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또 "고효율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우리나라에 밀집돼 있고, 과거 전 세계 70% 이상의 선박금융을 제공하던 유럽 금융업계의 경색이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만큼 해양·선박금융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양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해운업황 침체에도 불구, 세계 상위권 해운업계를 중심으로 고효율 선박의 확보 경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현재 발주되는 선박들은 기존 설계보다 약 10~20%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고효율 선박으로 꾸려지고 있다.
고연비 선박 중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연비 10% 향상은 운항 속도에 따라 최대 1000만달러까지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수치다. 이런 연료비 절감을 무기로 상위권 해운사들이 운임을 하락시켜 가격경쟁력을 촉발시킬 경우 해운업계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가격싸움에서 밀린 중소 해운사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면 이는 자연스레 살아 남은 대형 해운사들 중심의 공급 우위 구도로 재편될 상황.
이를 의식한 듯 달러를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는 미국계 사모펀드의 경우 고효율 선박을 낮은 가격에 건조할 수 있는 현 시점을 최고의 적기로 인식하고 발빠른 투자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덴마크,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해운 선진국들은 국가가 나서서 해운산업을 지원, 미래시장 선점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덴마크는 세계 1위 정기선사인 머스크(Maersk)에 5억2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선박금융을 위해 일반금융기관으로부터 62억달러를 차입했다. 머스크는 이 같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1만8000TEU급 선박 20척을 발주하는 등 고효율 선박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해에 국가개발은행 선박대출센터를 설립, 해운업 등에 약 131억달러를 지원했으며, 자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해외선사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물량을 끌어 모으고 있다. 최근 그리스 선사들은 이를 활용해 중국 조선소에 140척의 선박을 대량 발주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선박금융공사법과 해양금융공사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해운업의 빠른 회복과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해양·선박금융을 통한 ‘고효율 선박’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사진=최승근 기자)
반면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선박금융지원 규모는 세계 선박금융의 4% 수준으로, 미미하다 못해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는 평가다.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이 주로 담당하고 있어 대부분 민간주도로 운영되는 외국에 비해 지원 규모가 작다.
여기에다 최근 국내 조선소들이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설비 수주 물량을 늘려가면서 필요한 금융규모 또한 날로 커지고 있지만 국내 선박금융은 선박건조 등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운용에 대한 전문지식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해운사들의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해운사들이 자구책의 일환으로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직접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마저 시황 전망이 밝지 않아 금융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최근 국내 3위의 해운기업인
STX팬오션(028670)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해운업에 대한 금융계의 시선은 더없이 싸늘해졌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는 해양·선박금융 도입에 앞서 WTO 수출보조금 지급 금지 규정에 대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선·해운 등 특정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가 지원기관을 설립할 경우 통상마찰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조선업의 경우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과의 경쟁이 치열한 탓에 WTO 제소 등 예상치 못한 경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에 이재민 한국해양대학교 선박금융학과 교수는 "수혜자에 대한 혜택이 금액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면 보조금 시비를 피할 수 있다"며 "(가칭)해양선박금융공사의 대출금리가 시장금리 수준에서 결정되도록 하면 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수혜자에 대한 혜택은 수혜자가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와 비교해 얼마나 금액 면에서 혜택을 보았는가를 따져서 판정하기 때문에 공사의 대출금리가 시장금리 수준에서 결정되면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 보조금과 관련해 WTO 협정국 간 통상마찰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재정지원 ▲이에 따른 수혜자에 대한 혜택 발생 ▲지원 대상의 특정성 등 특정 요건이 성립해야 한다.
이 교수는 "특정성 존재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공사의 지원 산업 및 기업 범위를 해운과 조선에 국한하지 말고 해양 관련 산업 및 기업으로 폭넓게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감안해 선박금융공사보다 해양금융공사가 명칭이나 업무 범위 등에서 더 나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