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6월 국회에서도 경제민주화 입법은 소득없이 끝날 공산이 커졌다.
최근 불거진 '참여정부의 NLL 발언 공방'은 본질과 상관 없이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버렸고 그 와중에 당정이 공언한 경제민주화 법안은 하나같이 뒤로 밀린 형국이다.
단적으로 '재벌 개혁'의 시금석이 될 수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정부 안보다 후퇴한 채 국회 상임위에서 심사를 매듭 짓는 모양새다.
당초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 17일 국회에 보고한 내용은 공정거래법 3장을 보강해 5장이 놓치는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막자는 게 핵심이었는데 국회 정무위는 24일 법안심사소위에서 '3장 보강' 대신 5장만 손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전언이다.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이지만 공정거래법 3장으로 규제하느냐, 5장으로 규제하느냐에 따라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처벌수위는 달라질 수 있다.
공정거래법 5장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비해 3장은 재벌총수 일가에 대한 '경제력집중을 억제'하는 내용을 정하고 있어 3장이 보강되면 재벌총수에 대한 감시가 훨씬 촘촘해지는 효과를 거둔다.
예컨대 그룹 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준 정황이 명백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파급은 미미한 경우를 상정해보자.
공정거래법 3장을 보강해 규제하면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 5장만 적용하면 불공정행위에 대한 법 위반을 다툴 수 있을 뿐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부분은 고스란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물론 '법 개정' 작업을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법 위반이 적발되면 사정당국은 응당 '시장 경쟁 제한'과 '그룹 내 경제력 집중'을 두루 살펴 처벌해왔다는 반대측 해명이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3장에 별도 조항을 넣어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점인데 그만큼 총수 혼자 배불리는 기형적 재벌 구조를 지금 보다 엄격히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 보고한 '업무현황'에서 '대기업집단의 폐해 시정'을 1순위로 밝혀놓고도 이튿날 아침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속도조절론' 주문에 화답하는 말을 내놔서 경제민주화를 지지하는 이들을 실망시켰다.
그게 '행정부 일원'으로서 원론적 답변이었다 해도 '공정위의 정체성'을 감안한 또 다른 원칙적 답변 역시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뒤이어 국회도 공정거래법 3장 보강을 포기하는 선에서 논의를 매듭짓는 형국이다.
심지어 정부안이 이처럼 후퇴하게 된 이유로 현오석 부총리가 직접 '재검토'를 주문한 데 따른 것이라는 언론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재벌 개혁'에 대한 당정의 진정성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숙의 안 된' 입법안이 나라를 망친다는 재계와 보수진영 호들갑이 여전하지만 따지고보면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부각된 건 지난해 총선을 전후한 시점으로 벌써 1년이 넘었다.
경제민주화는 정부의 일관된 의지와 국회 조력이 중요할텐데 4월 국회에 이어 이번에도 재계 입김에 밀려 패퇴 기조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재벌 개혁이라면 공정거래법 '3장'과 '5장' 개정 사이에서 이는 중대한 시험대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