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근로자 결국 거리로..일터 잃고 국토 종단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대장정'

입력 : 2013-06-21 오후 3:04:18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급기야 근로자마저 나섰다. 하루하루 피 말리는 심정에 희망의 빛은 옅어만 가고 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기에 오히려 희망도 있었지만 이제 그마저 절망이 됐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고, 그 사이 생존권은 박탈 당했다. 개성공단 얘기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법인장들로 구성된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가 21일 한자리에 모였다. 한가롭게 '격'을 따지는 정부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를 종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두 다리로 설 힘이라도 남아 있는 한 개성공단만은 버릴 수 없다는 게 이들 입장. 
 
협의회는 국토대장정에 앞서 오는 25일까지 각 사별로 참여 인원을 접수 받는다. 조율을 거쳐 이달 말 국토대장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상황 변화에 맞춰 집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 여론에 기대는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일터를 잃고 거리로 나서게 됐다.
 
◇개성공단 근로자협의회는 21일 경기도 안산 중소기업진흥공단 연수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했다. (사진=이보라 기자)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86명은 이날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중소기업진흥공단 연수원에서 1박2일 워크샵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조건없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했다. 근로자협의회는 일종의 비상기구 성격으로, 기존에 개성에서 활동하던 근로자협의회를 대체하는 법인장급 임시기구다.
 
이들은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남북 양측에도 접점 찾기를 촉구했다. 협의회는 우선 우리정부에 개성공단 우리 근로자 2000여명과 국내 협력업체 2만5000여명의 생존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북측에는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개성공단 출입을 즉각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임동 근로자협의회 간사는 "정치적 문제로 인해 공단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절박한 심정과 정상화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대행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장민창 근로자협의회 임시위원장은 "우리 삶의 터전은 바로 개성공단"이라면서 "어떻게든 정상화가 되서 일하고 싶은 마음 뿐"이이라고 절박한 심정을 표했다. 생존에 대한 압박은 결기로 이어졌다.
 
20일부터 진행된 워크샵에서는 공단이 정상화되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참석한 법인장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업종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갖춘 데다 기존 북한 근로자들에게 익숙한 법인장을 해고한 것 자체가 회사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심정이라고 관계자는 털어놨다.
 
회사에 계속 몸담고 있더라도 월급을 못받거나 일부만 수령한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복수의 참석자들들은 전했다. 제때 주문물량을 맞추지 못하면서 원청 및 협력업체와 거래가 끊긴 곳도 다수다. 협력업체들 역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어 개성이 다시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한 관계자는 "숙소에 옷가지 같은 생필품도 모두 두고 왔다"면서 "당장 명함 하나 없는 지경"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짐을 쌀 때만 해도 금방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나이 돼서 다른 곳에 취직할 수도 없다"면서 "개성공단은 우리의 전부"라고 말했다. 삶을 바친 터전이었기에 그 아픔은 배가된다. "전부를 잃은 심정을 정부가 알겠느냐"는 울분도 토해졌다.
 
일부에선 개성공단 기업들이 여태 북한의 값싼 노동력으로 이득을 취해왔고,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정부의 보상이 어떤 형태로든 뒤따를 예정이어서 큰 피해는 아니지 않느냐는 일부 여론에 대해 서운하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한 법인장은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기 어려운 저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왔다. 오히려 국가 비용을 절감한 부분도 있다"면서 "입주기업들의 투자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값싼 노동력만 보고 우리를 비난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남북화해협력 기류가 싹트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개성공단에 입주했는데, 남북이 경색됐다고 해서 문을 닫으면 과연 누가 정부를 믿고 경영활동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제기됐다. 한마디로 정경분리 원칙 아래 경협을 지속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한편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 중 기계와 전자부품 업체들은 앞선 20일 여의도 개성공단정상화촉구비상대책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달 3일까지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중대결단'을 내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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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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