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기록의 엄중함', 그리고 새누리와 연산군

입력 : 2013-06-21 오후 4:25:56
서울 종로에는 세검정이라는 조선시대 정자가 하나 있다.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에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있는데 '동국여지비고'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세검정에서는 열조(列朝, 선대왕)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
 
'세초'는 사초를 씻는다는 의미로 사초를 흐르는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고 종이는 재활용했다 한다. '사초'는 조선시대 왕조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왕의 생존시에 썼던, 실록의 초고다.
 
세초는 조지서(造紙署)가 있던 세검정 앞 개천에서 했고 세초가 끝나면 실록 편찬에 참여했던 사관들을 격려하기 위해 부근 차일암(遮日巖)에서 세초연(洗草宴)이라는 잔치까지 열렸다 한다.
 
실록과 사초는 왕이라 할지라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왕이 볼 수 없게 한 조치 외에도 권력에 의한 탄압 가능성이 항상 있었던 사관과 그의 사초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들이 있었는데 세초도 그 하나다.
 
세초를 하는 이유는 기록의 유출을 막는 한편 선대왕에게 부정적 서술을 한 사관이 후대 권력자에 의해 박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관과 그의 사초가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당쟁에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미도 있었다.
 
이처럼 사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국왕이라 할지라도 사관이 쓴 사초의 내용을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조선조 내내 관통한 춘추필법의 대원칙에 따른 것이다.
 
춘추필법은 공자가 쓴 역사서 춘추의 기록정신을 나타내는 말로, 사실을 적고 선악을 논하고 대의명분을 밝혀 그것으로써 후세의 존왕(尊王)의 길을 가르쳐 천하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역사집필의 근본 철학이다.
 
왕조의 역사는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하며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이를 훼손할 수 없다는 선조들의 춘추 정신은 조선왕조실록 탄생의 밑바탕이 됐고 오늘날의 언론도 지켜야할 대의다.
 
태종실록 제7권 1404년 2월8일의 기록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태종이 사냥을 나가 사슴을 잡으려다 실수로 말에서 떨어졌다. 태종은 급히 일어나 (사관이 있는지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이 일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
 
사관은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일은 물론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그의 말까지도 사초에 기록했다.
 
인류가 탄생한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에 수많은 나라들과 수많은 왕조가 명멸했지만 건국부터 패망까지 최고권력자의 국정운영 전 과정을 비롯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재임 기간의 공과까지 평가한 역사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딱 하나, 조선왕조실록 뿐이다.
 
한국사는 물론이고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가치를 지닌 이 위대한 기록은 이렇게 춘추의 정신으로 탄생했다.
 
실록의 존재는 기록문화에 관한 한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국민보다 선진적이었음을 뜻한다.
 
실록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최근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한심스런 작태 때문이다.
 
전임도 아닌 전전임 대통령의 기록을 둘러싸고 터져나온 부끄러운 사태는 우리가 이 위대한 기록문화의 후계자가 될 능력과 자격이 과연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반대편에 있는 과거 대통령의 기록을 악용하는 행태는 그 자체가 패악이거니와 온전한 기록을 남겨 후대에 전한 선조들의 춘추정신을 능멸하는 짓이다.
 
그들은 미래 세대와의 소통에 쓰여져야 할 과거와 현재의 기록을 한때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불쏘시개로 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조선시대만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2013년의 대한민국을 춘추정신에 투철했던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보다 못한 사람들이 나서서 정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지 말라고 연일 호소하고 있지만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받는 상황에 몰려 있는 그 사람들은 이같은 절절한 호소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의 폭주를 막으려는 상식있는 사람들의 노력은 마치 해외의 공항에서 술마시며 고스톱판을 벌이는 '어글리 코리안'들에게 '세계시민의 품위를 지켜주세요'라고 말하는 상황과도 같이 암담하고 부질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반드시 되새겨야할 역사가 있다.
 
27명의 조선국왕 가운데 패륜의 대명사인 연산군은 실록을 봤다. 그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숙청할 명분을 얻기 위해 선대의 실록을 들춰봤고 사초를 쓴 사관 김일손을 참살했다. 무오사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를 오염시킨 연산군의 말로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이호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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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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