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정부가 복지재정 등 재정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비과세·감면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한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이 관련 정비기준을 제시하며 적극 호응했다.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집중된 세제혜택을 적정화하고, 세출예산과 중복되거나 대체가 가능한 경우에는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조세연구원은 26일 서울 송파대로 소재 조세연구원 대강당에서 과세형평제고를 위한 비과세·감면제도 정비에 대한 제언'이라는 주제의 공청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비과세·감면 정비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제시된 정비 방향은 연구기관의 제언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올해 세제개편안에 대거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세연구원은 우선 각종 비과세·감면이 정책목표달성을 위해 활용됐음에도 일몰규정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항구화, 기득권화되어 있다면서 특히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세수잠식효과는 재정건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매년 비과세·감면 축소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과세·감면 총규모는 2009년 31조1000억원, 2010년 30조원, 2011년 29조6000억원, 2012년 29조7000억원(잠정) 등 연간 30조원 내외에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특히 비과세·감면 혜택이 특정분야, 특정계층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학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정계층, 특정산업, 특정 경제행위에 대해 세제혜택을 과도하게 주는 경우 과세형평을 악화시키고 시장의 가격구조 변화를 초래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과세·감면의 분야별 비중을 보면 근로자의 소득공제에 31%나 집중돼 있고, 농림어업(17.6%)과 중소기업(14.6%)에 대한 세제지원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사회복지, 농림수산, 보건분야가 전체 비과세·감면의 82%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와 보건분야의 합계는 전체의 31.3%에 달했다.
대부분 취약분야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문제는 이 중 상당부분이 실질적인 정책효과가 없이 기득권화되어 있거나 고소득자에 대한 혜택 편중, 면세유 부정수급처럼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연구위원은 "정말 보호나 배려가 필요한 계층은 비과세·감면이 아니라 세출예산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세목별로는 비과세·감면 비중이 47.8%로 높은 소득세분야의 개편이 시급한 것으로 꼽혔다.
소득세는 세수확보와 함께 소득 재분배가 목적인데 비과세 비중이 너무 높다보니 재분배 기능이 크게 저하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 근로소득세 특별공제 항목의 경우 한도인 2500만원 이상의 특별공제를 받는 계층이 소득금액 5억원 초과의 고소득계층인데다 그 이하의 소득계층에서도 소득역진성이 심각한 상황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소득세의 비과세·감면방식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근로장려세제 확대와 자녀장려세제 도입 등을 감안해 부녀자 공제와 다자녀공제, 출생공제 등 중복지원 성격의 항목은 축소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금융소득에 대한 각종 비과세·감면 역시 고액의 금융자산가들에게 보다 큰 혜택이 집중되고 있어 취약계층의 저축지원과 중산층의 재산형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금융소득공합과세 기준금액이 2000만원으로 강화된 만큼 정책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부동산투자펀드, 선박투자펀드, 해외자원개발펀드 등 분리과세대상 금융상품과 비과세 장기저축성 보험 등에 대한 과세정상화 후속조치도 필요한 것으로 꼽혔다.
또 투자 및 연구개발(R&D) 세액공제는 법령상 설치가 의무화된 시설이나 세출예산으로 지원하는 시설에 대한 세제지원을 축소·폐지하고, 연구개발과 관련이 적은 인력개발비 인정범위를 조정하는 등의 비과세·감면 재설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비과세·감면도 수익성이 확보된 흑자 중소기업의 경우 세제지원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제도를 유지하되,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 적자중소기업은 세제지원 외에 다른 형태로의 직접적인 지원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학수 연구위원은 "직접적인 증세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세입기반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의지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조세원칙을 준수하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면서도 "세계적인 경기침체 및 국내경기 부진 등 대내외여건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비과세·감면 정비는 이해관계자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비과세·감면 정비가 결국 법령 개정사항임을 강조하며 "무엇보다도 우선돼야 할 사항은 비과세·감면 정비 필요성을 국회와 정부가 공유하고 빠른 시일 내에 입법화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