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다소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지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관광대국이자 PIGS 멤버 중 하나라고만 밝히겠다. 어디를 가도 한중일 삼국과 인도 사람들이 넘쳐났고, 전통의 강호인 유럽 및 미주 단체관광단까지 가세, 적어도 필자가 밟고 지나간 곳들에서는 기대(?)와 달리 유럽 경제위기의 그늘을 목격할 기회는 없었다.
오히려, 이번 휴가에서도 또 한번, 서구인의 뇌리에 박힌 한국의 이미지를 확인한 것은 독자들과 공유할 만하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식당에서 느끼한 현지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옆 테이블의 미국인 부부가 여행자의 특권, 익명성과 호기심을 발동하여 말을 걸어 왔다. “Where do you come from?”, “South Korea. Seoul!”
이후 몇 분간 이어진 대화의 키워드는 북한, 북핵, 김정일, 김정은, 전쟁 그리고 마침내, 삼성이었다. (그들이 싸이를 이야기할 만큼 젊지는 않았다.)
한국의 주식시장을 이야기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남북 분단 상황, 북한 도발위협, 또 재벌기업의 불투명한 경영, 국제 경기에 민감한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등의 이유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의 주가가 저평가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매일을 한국땅에서 사는 나로서는 별로 실감하지 못하는 그 같은 상황들이, 해외에서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녔구나 새삼 되돌아 봤다.
그렇게 휴가에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가 후 증후군을 거의 극복할 무렵, ‘버냉키 쇼크’가 한국 경제를 덮쳤다. 예상못한 상황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과격하게 반응하는 시장의 모습에는 난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상황은 진행 중이다. 버냉키쇼크에 중국의 유동성 리스크까지 악재로 작용한 주식시장은 1800선 아래까지 수직하강하더니 요 며칠새 겨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의 커플링(동조화)이 일반적인 추세이고, 주식시장의 판단과 흐름은 언제나 참으로 미묘하므로 이 같은 주가의 출렁임이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증시가 외부 영향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고 그 영향이 시황에 이토록 즉각적으로 크게 반영되는 것이 언제나 놀라울 뿐이다.
깜짝 놀란 당국이 폭락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긍정적 신호를 보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사실 지금의 한국경제는 취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짚어보면 긍정적인 부분도 꽤 있다.
1년 이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 규모는 6월 현재 1222억달러, 5월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3281억달러로, 유동성도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진단이다. 지난 5월 기준 경상수지는 86억4000만달러로 전월대비 2배(4월 39억7000만 달러)이상의 흑자를 기록, 16개월째 흑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연중 경상수지도 432.5억달러 흑자였다. 높은 수출 의존도를 고려할 때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의 변동성이 기업 활동의 걱정거리이긴 하겠으나 리스크 회피 방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닐 터.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입장과 중국의 단기적 유동성 수급 상황에 대한 우려만으로 이렇게 한국의 증시가 폭락한다는 것은 결국 주식시장 참여자들이 지닌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가 극히 낮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 개인, 기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의 저력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걸까?
코리아 `프리미엄`이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지속시키는 정치권과 정부, 기업의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색된 남북관계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의 정책들은 정쟁 대상이 되어 원칙없이 흔들리거나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이기 일쑤다. 재벌 대기업들은 핵심경쟁력 배양보다 탈세와 가족 후계구도 정착에, 노동자 권익 보호보다 사용자측 이윤 극대화에 너무 치우쳐 힘을 쏟는 행태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닥칠 버냉키쇼크를 극복하는 힘은 정치권과 정부, 기업이 신뢰와 상생을 위해 더 노력할 때 나온다. 구호로 그치지 말고 실행으로 성과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김종화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