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한국인이 일본기업에 강제징용된 데 법원이 일본기업의 불법행위성을 인정하고 손해배상 지급을 명령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9부(재판장 윤성근)는 10일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씨(90) 등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 4명에게 1억원씩 각각 지급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일본정부는 불법적인 침략전쟁을 자행하면서 장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했었다"며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구 일본제철이 이런 일본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 수행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였고,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의 기망적인 모집 행위 등으로 장차 일본에서 발생할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징용됐다"고 인정했다.
이어 "당시는 혹독한 전시총동원 시기로 원고들은 외출도 하지 못하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탈출을 시도하다 적발돼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며 "구 일본제철이 일본 정부와 함께 반인류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자료 지급은 일본의 일부 법령에 맞지 않고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 가치에 반한다"며 "이 사건은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일본 헌법의 가치에 반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국제질서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위자료는 국민소득의 변화, 통화가치 등을 고려해 산정했다"고 덧붙였다.
여씨 등은 1944년 신일본제철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징용돼 노역에 시달리다가 공습으로 제철소가 뒤 귀국했다.
이들은 1997년 오사카지방재판소과 오사카고등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손해배상 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지났고, 미지급 임금의 청구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 등으로 모두 패소했고, 상고는 포기했다.
이후 여씨 등은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냈으나 패소했고, 서울고법에 항소했으나 마찬가지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됐고, 청구권을 인정한다고 해도 소멸시효가 지났다으며, 또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여씨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