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명령' 종편..잘못 꿴 단추?

전문가들 "과다선정으로 인한 악순환..미디어 시장 교란 현실화"

입력 : 2013-07-10 오후 6:05:06
[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종합편성채널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종편에 대한 여론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데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시정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예고까지 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종편들은 수렁을 빠져나올 수 있는 묘수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방송업계와 학계는 과다선정으로 인한 경쟁 심화가 상황을 악화시켰고, 이것이 다시 자극적인 방송과 광고 시장 교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9일 방통위는 지난해 종편4개사와 보도전문채널의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모든 사업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의결했다.
 
점검 결과 나타난 종편의 실태는 참담한 수준이다. 재방비율은 평균 50%를 훌쩍 넘겼으며 보도 프로그램 비중이 30~50%에 달해 '종합편성'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했다.
 
종편이 약속했던 콘텐츠 투자계획과 국산 방송장비 산업 기여 계획 및 연구개발(R&D) 방안은 '공수표'로 밝혀졌다. 실제로 이행된 콘텐츠 투자액은 당초 계획에서 반토막이 났고 방송 장비 기여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종편 출범당시 이명박 정부는 ▲여론 다양성 확대 ▲일자리 창출 ▲방송·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3가지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종편의 탄생으로 방송시장 규모는 1조6000억원, 생산유발효과 2조9000억원, 취업유발효과 2만1000명 각각 증가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현재까지로는 이 모든 것이 '희망 사항'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종편 4개사가 한꺼번에 방송시장에 들어올 때부터 정책 실패는 예견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은 "방통위가 정치적 판단에 휘말려 종편을 4개사나 출범시켰던 일이 자업자득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며 "종편의 전망을 밝게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종편 사업자 선정 당시 대다수 전문가들은 "국내 방송시장 상황에서는 2개의 종편 사업자가 적정하다"고 주장했지만 그 2배인 4개 사업자가 한 번에 시장에 진입하면서 여건이 크게 악화됐다.
 
출범 초기 종편들은 야심찬 기획을 내놨지만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재정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TV조선은 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해 창사특집 드라마 '한반도'를 제작했지만 1% 이하의 저조한 시청률에 쓸쓸히 조기종영했다. 유명 작가와 톱스타들을 앞세운 드라마를 여러편 제작했던 JTBC는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제작비 부담으로 종편사 중 가장 큰 적자규모를 안고 있다.
 
실제로 JTBC·TV조선·채널A·MBN 종편 채널 4사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총 2760억원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적자규모는 모기업인 거대 신문사들마저 휘청이게 하고 있다.
 
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35개 주요 신문사들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조선일보의 지난해 지분법 손실은 113억원이었다. 대부분 TV조선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도 대손 상각과 지분법 손실이 각각 170억원과 102억원을 기록했다. 역시 상당 부분이 JTBC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지분법 손실이 220억원도 채널A의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다. 종편사들이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되면서 적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보도·시사 프로그램에 치중하게 된 것이다. 특히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오른 점도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했다.
 
선정적인 내용과 방송 품위 저하도 문제다. 개국 때부터 올 3월까지 방통심의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종편이 제재 조치를 건수는 136건에 이른다. 최근에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왜곡과 아기아나기 항공기 사고에 대한 멘트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종편 4사는 사업 승인 당시 언어순화, 일정비율의 공익프로그램 제작, 균형잡힌 편성 등을 사업계획서로 제출했으나 막말이 난무하고 시사프로그램 비중만 매우 크다"며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시청률을 올려야 해 편향적인 시사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고 시장의 혼란에 대한 우려도 크다.
 
3년간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법 적용을 유예받은 종편들은 광고를 직접판매하고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종편이 시청률은 바닥 수준이지만 모회사의 힘을 빌어 '깡패 영업'을 하고 있다는 불만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몇 종편사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를 통해 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실무진의 반발로 무산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결국 밥그릇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때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종편 관계자들이 모여 미디어렙법 시행 연기를 위해 단체행동에 돌입하자고 논의한 '단합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수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종편들은 더 많은 특혜를 원하고 있다. 정부에는 8VSB와 선거광고 허용을 주장하고 있으며, 유료방송 사업자들에게는 수신료(프로그램 사용료) 분배를 요구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번 점검결과를 바탕으로 종편사들에 이번달 안에 이행촉구 공문을 발송하고 시정명령을 사전통지 할 계획이다. 다음달에 시정명령을 집행하고 이행촉구 대상에 대한 구체적 이행계획을 접수한다는 방침이다.
 
김준상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이번 점검은 여느 때보다 정교하고 철저하게 시행했으며 가장 엄격한 조치를 내렸다"며 "향후에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을 통한 검증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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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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