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에 대한 고집..광동제약 일군 최수부 회장 별세

입력 : 2013-07-24 오후 6:02:36
[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광동제약(009290) 창업주 최수부 회장(사진)이 24일 휴가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7세. 광동제약은 이날 “최 회장이 강원도 한 골프장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지난 1936년 일본 기타큐슈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났다. 가세가 기울자 고인은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됐다. 그는 나무를 해서 시장에서 팔아 여덟 가족을 부양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고려인삼사에서 약을 파는 외판원을 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전 담배장사, 엿장수 등 안해 본 장사가 없었던 고인은 1960년 고려인삼산업사에서 영업직 외판사원을 하면서 제약업계와 처음으로 연을 맺었다.
 
남다른 성실과 정직, 끈기로 외판원으로 성공한 그는 월급을 모은 돈으로 1963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있는 집을 구입한다. 집 마당에 가마솥을 걸어 넣고 ‘경옥고’를 제조하기 위해서였다. 시작했다. 광동제약의 시작이다.
 
외판원 시절, 창업자금과 경험을 쌓은 고인은 그해 광동제약을 창업했다. 품질에 대한 고집 하나만으로 광동제약을 일으켰다. ‘최씨 고집’의 대명사로 불리던 그는 40년간 한방제약기업 외길을 걸었다. 광동제약이 한해 매출 3300억원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이었다.
 
고인은 싼 한약재를 사용하지 않는 ‘최씨 고집’으로 특히 유명했다. 직접 약품 재료를 검수하고 확인하는 고집스러운 모습은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해졌고, 신뢰의 상징이 됐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고집과 철학을 바탕으로 ‘쌍화탕’, ‘우황청심환’ 등의 성공을 이끌며 승승장구했다.
 
시련도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광동제약은 부도에 직면하기도 했다. 극복한 뒤엔 더욱 강해졌다. 광동제약은 2000년대 들어 내놓은 ‘비타500’과 ‘옥수수 수염차’ 등이 음료시장에서 빅히트 상품으로 자리하며 제약은 물론 음료기업으로도 명성을  널리 알렸다.  
 
고인은 한방의료 체계를 구축해 국민건강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국민훈장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뚝심경영’, ‘원칙 중심의 경영’, ‘행동하는 리더십’으로 빈손에서 중견 제약사를 키워냈다는 게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일희(66)씨와 아들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최 회장의 별세로 광동제약은 2세경영으로 접어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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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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