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실종된 사태에 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대화록이 정말 사라진 건지, 참여정부 당시 대화록을 정상적으로 이관했는지 등이 핵심 수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나올 결과들은 우선 대화록이 기록원에 있을 가능성, 그리고 참여정부가 대화록을 넘기지 않았을 가능성, 또 대화록은 넘겼지만 그 이후 어떤 이유로 대화록이 사라졌을 가능성 등이다.
만약 대화록이 기록원에 존재하거나 참여정부에서 대화록을 다른 기록물들과 함께 이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 대화록 폐기 의혹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반면 참여정부에서 대화록을 넘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이 드러날까 우려해 대화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한층 힘을 받게 되고 문재인 의원과 민주당은 사초(史草) 폐기 직격탄을 맞게 된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봤을 때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 폐기를 지시했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25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참여정부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에는 삭제 기능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이 시스템 제작자로부터 확인됐다.
이지원 시스템을 구동하면 대화록이 있을 가능성이 있고 또 다른 지정기록들 사이에서 대화록이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애당초 국회 열람위원들도 기록원 시스템 검색을 통해서만 기록을 찾아봤을 뿐 이지원이나 다른 시스템을 돌려보진 않았다.
또 정상간 대화를 녹음하고 국정원으로부터 대화록을 받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은 노무현재단을 통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화록 폐기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기록 미이관설을 전면 부인했다.
아울러 차기 정부에서 대북관계에 참고하라고 국가정보원에 대화록 보유를 지시했던 노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에는 대화록을 넘기지 말라고 지시했을 논리적 근거도 빈약하다.
즉 국회는 기록을 완벽히 찾아보지 않았을 뿐더러 기록 이관에 관련된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일관되게 정상적으로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넘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기록이 넘어가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현재로선 기록원에서 대화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과 NLL 포기발언이 있기 때문에 이를 숨기려 넘기지 않았다는 추측 뿐이다.
그런데 검찰 수사를 통해 대화록이 정상적으로 기록원에 이관된 것이 확인되면 이는 사초 폐기의 주체가 새누리당이라는 의미가 된다. 기록 이관 이후 관리주체는 MB정부 기록원이기 때문이다. 관리부실이든 의도적 폐기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새누리 정권의 책임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MB정부가 왜 기록을 폐기하겠느냐, 무슨 실익이 있어 기록을 폐기하겠느냐는 질문에 부닥친다.
여기에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국정원의 대화록 조작 의혹이 대답이 될 전망이다. 국정원이 대화록을 조작했고 이것이 원본과 대조되면 즉시 조작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원본을 폐기했을 동기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24일 국정조사에서 노 대통령이 NLL 포기발언을 한 것처럼 국정원이 대화록을 조작했고 이 요약보고서가 청와대에 올라갔으며 권영세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이 이같은 내용을 말하는 녹취록을 폭로했다.
박 의원이 제시한 녹취록에 따르면 권영세 실장은 "원세훈으로 원장 바뀐 이후로 기억하는데 내용을 다시 끼워 맞췄다. 그 내용을 가지고 청와대에 요약 보고를 한 거지. 그게 어떤 경로로 정문헌한테 갔는데"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끼워 맞췄다"는 말은 이명박 정부 내내 국내정치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원세훈 국정원이 대화록을 짜집기해 조작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 청와대에 요약 보고가 됐고, 정문헌 의원이 이 왜곡 대화록을 근거로 '노무현 NLL 포기 의혹'을 제기했음도 유추할 수 있다.
'끼워맞춘 대화록'의 요약보고서가 청와대에 올라갔다는 것은 당시 언론보도로도 확인이 됐다.
2012년 10월11일 <조선일보>는 'NLL 주장 않겠다는 노(盧) 발언 요약 보고서, 청와대 올라왔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NLL 포기 발언이 있다는 대화록의 요약보고를 청와대가 받았다는 내용의 이 기사 제목은 박 의원의 폭로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또 이 기사에는 대화록을 봤다며 내용을 알려준 '여권 고위관계자'가 나오는데 이 사람이 바로 권영세 실장일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의 대화록 조작과 그 요약본의 청와대 보고가 사실로 나타나면 기록원의 원본은 그 조작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국정원 대화록과 기록원 원본을 비교해보면 당장에 조작여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만간 검찰의 수사로 드러나게 될 대화록 실종에 대한 진실이 '사초 게이트'로 문 의원과 민주당에 일격을 가하게 될지, 새누리당 정권에 부메랑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