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세시봉과 조용필 19집, 그리고 주택정책

입력 : 2013-07-30 오후 9:40:06
1969년 어느날, 서울 무교동의 세시봉(C'est si bon : 아주멋진)이라는 음악감상실에서 (지금은 전설로 불리는) 대학생 가수 윤형주와 송창식(트윈폴리오)이 통기타를 치며 멋들어지게 번안 가요를 부르고 있다. 넓은 깃의 컬러풀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의 환호가 감상실 안에 가득 찬다.
 
전축은커녕 팝송 앨범(LP)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들이 재해석 해 들려주는 번안곡은 가희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당대 최고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음악으로 하나 된 (지금은 7080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감미롭고, 때로는 강렬한 포크음악을 통해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퍼져나간 포크와 통기타는 한참 동안이나 대학생들의 전유물로 기억될 정도였으니, 세시봉은 음악을 감상하는 장소의 개념을 떠나 시대의 지성들을 각성시키고, 트렌드를 마구 분출시키는 문화의 허브였던 셈이다.
 
그해 12월, 결성 1년여 만에 들려온 이들의 해체 소식에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집단 멘붕'에 빠진다. 그때의 파장은 비슷한 시기 비틀즈(1970년)와 사이먼&가펑클(1971년)의 해체 충격파와 비교될 만큼이었다니 언뜻 트윈폴리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 이후에도 실력파 포크 가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세시봉에 모여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무수한 히트곡들을 남긴다. 조영남과 이장희가 그랬고, 막내격인 김세환도 세시봉이 발굴한 아티스트다.
 
시간이 흘러 각자 활동을 하던 이들은 40여년이 지나 다시 집중 조명을 받는다. 천편일륜 아이돌 가수가 판을 치는 가요계의 한구석에서 추억을 곱씹기만 하던 7080세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다. 미사리가 아닌 공연장으로….
 
추억에 목마른 7080세대들의 부름을 받은 당대 영웅들은 '세시봉 친구들'로 뭉쳐 한 방송사가 마련한 특집프로그램을 통해 원숙미 넘치는 감동을 다시 한 번 전한다. 그 역사적인(?) 광경을 지켜본 그 때 그 시절 언니오빠들은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에 올라타 희열을 느낀다.
 
이후 브라운관에서 튀어나온 '세시봉 친구들'은 내친김에 전국을 돌며 콘서트 붐까지 일으킨다.
 
중년의 관객들은 (미국 LA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살다 돌아온) 이장희가 작사작곡한 영화 <별들의 고향>(1974년) 삽입곡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들으며 아련한 회상에 젖는다. 물론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의 환상적인 하모니를 곁들여서.
 
다시금 엄마와 아빠 세대를 움직이게 한 40년 전 강렬한 에너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까지 전파됐다고 한다. 세시봉 붐 이전부터 조금씩 재조명 받기 시작한 그 옛날 명곡들이 리메이크 돼 다시 불리고 있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 등도 이런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분위기 속, 지난 4월 발매된 조용필 19집 <Hello>는 젊은이들의 열린 마음에 자연스럽게 침투했다. 7080세대들에게만 관심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어 버렸다.
 
10년 만의 새 앨범은 발매 즉시 수록곡인 '바운스(Bounce)를 빌보드 K팝 차트 1위로 추켜올렸다. 빌보드차트는 조용필을 가요의 왕, 한국의 마이클잭슨 이라고 칭송했다.
 
요즘 같은 음반시장 불황에 밀리언셀러로 평가받는 10만장 판매 돌파는 물론, 라디오 방송횟수 1위, 통신 3사 컬러링·벨소리 차트 1위를 단시간 내에 석권했다. 동시에 국내 9개 음원차트 1위를 싹쓸이 하는 기염을 토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음원을 다운로드 받은 팬들 중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세시봉과 조용필의 최근 인기는 40~50대의 심금을 울리던 '왕들의 귀환'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니 잘은 모르겠지만, 들은풍월로 말해보자면 조용필의 새 앨범은 단순히 옛것을 추억하는 '향수'에 기인한 것이 아닌 젊은 감각에 맞는 비트와 사운드, 가사 등이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물론 조용필 스러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리워했던 팬들을 만족시킨다.
 
조용필은 이번 앨범 제작을 위해 국내 아이돌 음악은 물론 세계적으로 주류를 이루는 음악들을 끊임없이 들으며 자신의 감각과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흐름을 알고 대세를 아니 64살의 흘러간 옛가수가 아닌 현역 가수로 당당히 젊은이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충족해 줬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굳이 생뚱맞은 소리 한번 해보자.
 
요즘 우리나라 주택정책을 되짚어 보면 정부나, 정치권, 시장 모두 조금은 다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에 열광하는 분위기다. 꺼져버린 주택 매매시장에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갖은 대책을 다 쏟아내고 있다. 과거의 히트작이 그리운 시장은 또 다른 대책을 내놓으라고 난리법석이다.
 
주택시장 호황기의 마감은 마치 40년 전 트윈폴리가 해체했을 때처럼 큰 충격을 일으켰고, 그 때의 황홀함을 잊지 못한 시장은 눈앞에 영웅이 다시 한 번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물론 바람의 정도는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에 부담을 느낀 정부는 취득세·양도세 한시적 면제 등 세제혜택에 이어, 최근에는 후속 대책으로 인위적인 수급조절에 까지 나서기로 했다.
 
오는 2016년까지 4년 동안 수도권 내 사업인허가 전인 공공분양 아파트 중 11만9000가구를 축소하고, 이미 인허가를 받아 분양 준비 중인 공공 물량 5만1000가구는 2017년 이후로 청약 시기를 늦춘다는 계획이다.
 
매매시장이 그토록 원하는 집값안정을 이끌기 위한 안간힘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수차례의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취득세 일시 감면이 마감된 6월 말 직전까지의 실적과 대비해 다시 거래절벽을 염려하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지난 6월 한 달 서울기준 주택 매매 실적은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던 2006년 1만4762건 이후 가장 높은 8974건을 기록했다. 그러나 매번 그렇듯 반짝 효과였다. 취득세 감면 종료 후 7월 중순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약 995건으로 일평균 52.3건 이었다. 6월 300.9건에 비해 무려 82.5%나 줄어든 수치다.
 
앞서 지난해 말 취득세 추가 감면 종료 직후에도 36.5건으로 뚝 떨어진바 있다. 시장은 일시적 세제 혜택이 끝나면 즉시 거래에 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거기에 상황이 악화되면 정부가 또다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외치며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거라는 기대 심리도 시장경색의 원인이 됐다.
 
기대 심리는 곳 매번 한발씩을 빼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하면서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안전행정부가 3억원 이하 주택을 거래할 때만 취득세율을 1%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장은 즉시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취재 일선의 후배 기자말로는 안행부의 발표에 '귀엽다'는 조롱 섞인 반응도 나왔단다.
 
수도권에는 매매가 3억원은 커녕 전세가 3억원 이상인 집이 부지기수인데 또 한발을 뺀 하나마나 한 탁상공론의 결과를 내놓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수가 줄어들 지방자치단체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지만, 세시봉 친구들과는 다른 감동 없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돼 버렸다.
 
실제로 부동산 정보업체가 최근 조사한 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은 4억4175만원이다. 이중 강남은 5억1033만원에 달한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평균 가격은 3억2875만원이다. 평균 가격으로만 보면 수도권에서 혜택을 받을 수요자는 전무하다.
 
여기에 정부가 발표한 수급조절 정책이 시작될 경우 매매시장은 당분간 더더욱 굳어질 게 뻔하다. 팔고 살 물건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전세난이 심각한 수도권에는 좀 전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마나한 탁상공론이란 말이 꼭 들어맞는다.
 
서울시의 전세가가 3.3㎡당 900만원을 넘어섰다. 어느 지역에는 집값의 90%를 넘는 '미친 전세'까지 생겼다. 당장 수급조절에 들어가 몇 년 후 집값이 정상화 된다 치자, 몇 년 후 분양될 아파트 몇 천 가구를 전세로 돌린다고 치자. 그동안 수도권 세입자들은 대체 어디로 가있으란 말인가.
 
시장은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의 부동산 광풍은 포기한지 오래다. 정상적인 매매가 이루어져 전세시장이 그나마 평온했던 그런 시절을 그리워한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중과폐지, 분양가상한제폐지 등을 조물딱거리기만 하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당론에 목매지 말아달라는 비난이 높은 이유다. 시대에 맞게 다 내주던지, 아니면 눈이 번쩍 뜨일 아이디어를 내 놓으란 말일터다.
 
세시봉 처럼 다 주지만, 기본을 지키면서, 시장 변화를 빠르게 읽는 현실적인 감각을 갖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래서 누구나 인정하고 공감하는 무언가를 선보이길 바란다. '가왕' 조용필의 바운스처럼.
 
박관종 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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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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