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너도나도 STX 얘기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회장이 좌초했다. M&A의 귀재로 불리며 STX그룹을 재계 13위로까지 올렸던 그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치 못하고 끝내 채권단에 손을 내밀 때만 해도 이 정도의 몰락은 예상치 못했다. 일각에서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룹 회생의 길은 열렸지만 그는 철저히 경영권에서 배제됐다. 총수로서의 사태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돌릴 수는 없지만 감당키에는 너무나도 큰 수모다. 채권단은 구원군이 아닌 점령군이 됐다.
지난 5월 STX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자율협약을 신청할 당시 채권단을 주도하는 산업은행 측은 "무조건적으로 오너를 배제하는 것은 경영 정상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오너의 도움을 받아서 조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시장에서는 채권단이 강 회장의 경영권을 유지시켜 줄 것으로 받아들였다. 예상은 빗나갔다. 막상 경영정상화 작업이 본격화되자 채권단은 STX그룹에서 강 회장의 흔적을 지우는데 더 공을 들였다.
조선경기 사이클을 고려치 않은 무분별한 사업 확장은 분명 비판의 대상이다. 중국이 급격히 쫓아오는 상황에서 해양플랜트 등 기술진입 장벽이 높은 고부가 가치 분야로의 전환도 이뤄지지 않았다. 덩치는 커지는데 속은 부채로 곪아졌다. 채권단이 강 회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형평성의 문제도 지적한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경우와 비교하면 차별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대를 잇는 가문 경영의 후계자가 아닌 '평민' 출신이라는 한계를 탓하는 술렁임도 일었다. 패자부활전의 기회마저 박탈한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평가다.
실제 STX그룹과 마찬가지로 부실 덩어리로 판정난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경우,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 우선매수청구권까지 부여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줬다. 특히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상호출자를 용인했다. 골육상전을 벌이고 있는 금호석화는 박삼구 회장에 대한 특혜로 받아들이며 반발했다.
심지어 이번 STX그룹에 대한 채권단의 조치는 향후 기업들에게 자율협약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정관리에 비해 강도가 낮은 자율협약으로도 경영권 박탈은 물론 관련 지분 등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나다시피 내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채권단이 STX조선해양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STX조선그룹의 정상화를 결정해 놓고 해외 수주에서 여전히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강 회장을 배제시킨 점은 분명 오판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가 구축한 글로벌 인맥은 STX그룹에게 있어 분명 자산인 점이 인정된다. 특히 글로벌 조선업이 회복세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퇴진은 아쉬워 보인다.
현재 STX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은 큰 틀은 마무리됐다. 세부사항을 논의할 단계에 진입했다. 본격적인 경영정상화 작업에 앞서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자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구원군으로 온 채권단이 점령군이 돼선 안 된다. 구원군(救援軍)은 문자 그대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기 위한 군대다. 권한만을 강조하는 채권단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