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증권 본점.(사진=김동훈기자)
[뉴스토마토 김동훈·홍경표기자] "대학교 4학년 2학기라 채용 설명회 갔었는데, 아무래도 찝찝해서 본점으로 왔어요."
24일 오후 2시30분
동양증권(003470) 서울 본점. 비가 내리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20대 대학생은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저축은행 때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보며 저 사람들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며 "사는 곳인 성남시 죽전이나 학교 근처인 대학로 쪽 지점에는 지점장들이 대기표조차 더이상 뽑아주지 않아 고성이 오갔다"고 설명했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양그룹과 관련 "동양증권에 예치된 투자자의 자산이 안전하다"고 밝혔지만, 고객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날 동양증권 서울 본점에는 오후 3시까지 400명에 달하는 고객이 몰려들었다. 기자가 본점을 방문한 무렵에도 대기인수는 72명. 영업시간이 끝나갈 때쯤엔 대기인수가 5분마다 10명씩 늘어나는 모양새였다.
모든 창구는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두세 명씩 창구 직원 앞에 둘러 앉아 상담을 듣고 있었다.
대부분은 "불안해서 전액을 인출하겠다"고 말했다. 채권의 경우 만기에 따라 찾을 수 없다는 직원들의 설명에 수차례 정수기 물을 마시는 등 발을 동동 굴리는 고객들도 있었다. 일부는 "괜찮을 것"이라는 직원의 설명에 발길을 돌렸다가 다시 돈을 찾으러 오기도 했다.
특히 한 50대 남성이 "CMA를 2000만원 가지고 있는데 다 찾을 것"이라고 말하자 뉴스를 시청하던 40대 남성은 "거 봐요. 언론에서 '최대 위기'라고 하는데다 저축은행도 겪었고 정부는 안 도와줄 것 같고 회사가 오늘내일할 것 같으니까 불안하지"라고 거들었다.
600만원 이하의 금액을 예치한 사람들은 고객 스스로 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대기표를 쓰레기통에 넣고 ATM 앞에서 돈을 인출했다.
지점 직원들은 '고객자산 보호 관련 안내문'이라는 설명서를 방문 고객에게 나눠주고 번호표도 직접 뽑아주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동양증권 관계자는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 환매해 간 고객이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의도 지점 앞의 모습은 뜻밖에 한산했다. 문을 들어서도 분위기는 마찬가지. 1층 로비에도 기다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경비원과 빌딩 안내원만이 서 있었다.
영업부인 2층으로 올라가자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복도 벽에는 예금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될 수 있다는 신문 기사들이 붙어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람들이 대기표를 들고 서성였다. 영업점 앞으로 들어가 접수번호를 뽑아보니 대기인수가 122명이었다. 지점 직원은 "1시간 정도 기다리면 된다"며 "점심시간 이후 갑자기 사람이 몰렸다"고 말했다.
신규 펀드나 CMA 창구 4~5곳에는 사람이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인출이나 펀드 환매 업무는 여기서 담당하지 않는다는 게 지점 직원의 설명이다.
지점 직원들은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지점의 한 직원에게 다가가 ELS상품은 보호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원금 보장형 ELS가 아니더라도 관련자산을 회사와 분리해 관리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고객들은 대부분 불안해 했다.
한 20대 남성은 "CMA계좌와 주식계좌가 있는데, 불안하니 해지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지점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50대 중년 여성도 "비보장형 홍콩 ELS 펀드를 가입했는데 망하면 원금보장도 안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한 40대 여성은 "남편과 아들 펀드 두 개 모두 해약해야겠다"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예금이나 펀드는 안전하다던 금감원의 이날 오전 발표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