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각국 어느나라건 여배우라는 직업은 아름다움을 강요받는다. 언제 어디서든 예쁜 모습을 보여야하고, 청순함이든 섹시함이든 우아함이든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야 살아남는 위치다. 또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하는 여배우들이 상당할 것이다.
최근 기존 여배우들의 바람과 선을 긋고, 배우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여배우들이 있어 눈에 띈다. 문정희와 엄지원이다.
문정희는 영화 '숨바꼭질'에서 남의 집을 빼앗는 무서운 엄마 주희를 맡아 노숙자 같은 비주얼로 몰입도 높는 연기를 펼쳤고, 엄지원은 '소원'에서 아동성폭행을 당한 딸의 엄마 주희를 맡아 노메이크업으로 열연했다.
문정희 (사진제공=NEW)
◇문정희 "예쁜게 중요한가요"
얼굴만 보이면 무서웠고, 눈을 가렸다. 영화 '황해' 면정학(김윤석 분)이 여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헬멧을 쓰고 전미선을 공격하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미친사람처럼 날뛰었다. 극중 많이 배우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과 거리가 있는 느낌의 주희의 옷차림이나 화장법은 촌스럽고 볼품없었다.
40대의 아줌마처럼 보이기 위해 살도 찌웠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옷을 두껍게 껴입었다. 그렇게 문정희는 주희가 되기 위해 작은 부분 하나 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들이 스크린 안에서 드러났다.
관객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지만, 여배우라는 위치에서 자신의 볼품없는 행색을 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결코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못생기게 나왔더라고요." '숨바꼭질'에 나온 자신을 보고 문정희가 한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 있었다.
문정희는 "예쁜 역할이 아니라서 아쉬운 건 없냐고 하는데, 예쁜 게 꼭 중요한가요. 배우로서 욕심이 저마다 다 다를텐데, 난 나만의 욕심이 있어요. 역할에 대한 욕심이 크다는 거겠죠. 예쁨을 따라가기 보다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엄지원(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엄지원 "예쁘게 보이지 말자"
어느덧 배우 경력 10년이 넘었다. 연기력만큼은 어디내놔도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엄지원'하면 딱 떠오르는 작품이 없는게 그의 현주소다.
오는 10월 2일 개봉을 앞둔 '소원'은 엄지원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가장 빛나는 작품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 자체도 훌륭할 뿐 아니라, 엄지원이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연기로 보여준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극중 엄지원이 맡은 미희는 아동성폭행을 당한 딸 소원의 엄마다.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되려 딸에게 더 의지하는 부산 아줌마다. 성깔도 있어 픽픽 자존심을 드러내고, 목청도 크다.
아이가 일을 당하고 난 뒤에는 잔인한 세상에 상처를 같이 받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도 성질을 내고 으악스럽게 행동한다. 눈물도 많아 깊은 오열을 쏟아낸다.
극의 시점은 미희가 임신 5개월부터 만삭이 되는 과정까지 그려진다. 영화 촬영 시작 전부터 살을 찌웠고, 영화 촬영 중에도 조금씩 살을 찌워나갔다. 임신한 부산 아줌라는 특성 때문에 2시간 내내 노메이크업으로 등장한다.
화보를 찍을 때나 드라마에 출연할 때처럼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주얼을 포기한 엄지원의 '소원'에서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으악스러운 아줌마에서 남편과 자신의 주변에 고마움을 느끼고 차츰 성장해나가는 미희를 그린 엄지원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엄지원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억척스런 부산 아줌마를 그릴 수 있었을까.
엄지원은 "'예쁘게 보이지 말자', '예쁜 것을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정말 못생기게 나오더라. 진심으로 연기하길 바랐고, 진짜 미희가 되길 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