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소환한 허인철..국감스타 급부상

입력 : 2013-10-16 오후 3:29:38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15일 재계 저녁모임마다 화제는 단연 허인철 이마트 대표였다. “오늘의 국감스타”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노조 파괴 전략을 담은 삼성의 내부문건도 소용없었다. 그의 무성의한 답변과 태도는 여야 의원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고, 이는 결국 정용진 부회장(사진) 증인 채택으로 이어졌다. 오너의 소환이었다.
 
이날 오후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허 대표는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낳고 있는 SSM(기업형슈퍼마켓)의 무리한 확장을 질책하는 여야 위원들에게 그는 “모른다”, “내가 말할 답변이 아니다”, “내가 맡은 회사와는 상관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보다 못한 상임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섰다. 강창일 위원장은 허 대표에게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신세계 관계사 중 하나”라며 “(계속해서 모른다고 하니) 정용진 부회장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모시는 분 욕되게 해도 되냐. 아는 범위에서 최대한 답변해 달라”고 꾸짖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했다. 허 대표는 “사실 제가 SSM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여야 위원들 호통에도 별 표정 변화를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국감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진복 의원은 “저렇게 부인하는데 증인을 계속 둘 이유가 없다. 그룹 부회장이 와야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냈고, 오영식 의원도 “동의한다”며 “여야 합의해서 그룹 부회장을 부르자”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와 답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질책만 뒤따랐다. 오영식 의원은 이마트의 횡포가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을 들이대도 허 대표의 반응이 없자 “유통 3사 중에 가장 행태가 안 좋다. 지금도 문제되는 부분에 대해 임기응변식으로 모면하려는데, 대형 유통업체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으니 갑의 횡포가 없어지겠느냐”고 분개했다. 이진복 의원도 허 대표를 향해 “13년간 거래하던 기업(미래) 제품을 그대로 베껴서 만들었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하냐”며 “이마트 정말 문제 많은 회사다. 사고 자체가 틀렸다”고 질타했다.
 
국감 진행이 원활하지 않자 강창일 위원장이 다시 나섰다. 그는 “모든 질문에 부인하고 잘 모르겠다고 하니 여야 간사가 합의해서 그룹 회장을 부르든지 하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속전속결이었다. 강 위원장이 “11월1일 종합감사 때 정용진 부회장 부르는 것 정식으로 채택 건의한다. 증인추가선택의 건을 상정한다”며 “정 부회장 부른 후 심문한 뒤 그래도 부족하면 청문회로 가자”고 말했다.
 
여상규 의원이 “사장도 모르는 일을 부회장이 나오면 뭐 얼마나 알겠느냐”며 “보복성 증인채택으로 보일 것 같다”고 우려했지만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여야 위원들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 위원장은 “국회에 대한 모독이고 무시고, 이강후 의원 질의할 때 자세 봐라. 국회로서 자존심 상해서 그렇다.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용납 못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비보를 접한 신세계그룹은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해외출장을 핑계로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해 법원으로부터 이례적으로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았던 정 부회장이 끝내 국감장 증언대에 서게 됐다. 당시 했던 반성을 떠올리면 이번만은 출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라 당혹스럽다”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정 부회장의) 출석은 피할 수 없게 된 것 같다”며 “성실히 준비해서 답변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군이 적군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재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갔어야 했는데 대응이 잘못됐다”고 반응했다.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와 정서를 감안할 때 오너의 치욕으로도 비칠 수 있는 대목이라는 설명이다. 여야 한목소리로 대형 유통기업들을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허 대표의 원론적 답변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재계로서는 웃지 못할 비극이자 희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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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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