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성한 경찰청장께 드리는 편지

입력 : 2013-10-22 오후 6:34:19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이성한 경찰청장님, 날씨가 싸늘해져가는 요즈음 수고하십니다. 언론사 '뉴스토마토'에서 스포츠 분야를 취재 중인 이준혁 기자입니다.  
 
지난 21일은 68번째 맞는 '경찰의 날'이었습니다. 본래 21일 보냈어야 하는 편지인데 경찰조직의 경사스런 날에 재를 뿌릴까봐 이제야 글을 발송하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현재 야구계는 매우 분주합니다. 청장님도 업무로 분주한 와중에 야구를 보신다면 아시겠지만 국내 야구계는 최근 포스트시즌 기간입니다. 지난 반 년간 정규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들을 모아 토너먼트 형태 단기전으로 우승팀을 결정짓는 기간이지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4개구단 팬들은 물론 모든 9개구단 팬과 야구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경기를 보면서 희열과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축제 기간에 여러가지 불법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이익을 편취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암표상'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표를 구해 정가보다 약 3~8배 달하는 폭리를 취합니다.
  
암표상들은 어느 시절이나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했습니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암표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축구 종가인 영국에서도 경기 2시간 전에 축구장 주변부를 서성이면 '티켓(Ticket)'이라고 속삭이는 암표상을 접하는 것은 손쉽습니다. 프로스포츠가 사라지게 되는 그날까지 '암표'는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만 최근 암표에 대해 취재를 하면서 한국의 암표 현실은 어처구니 없음을 알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찰의 묵인'과 '소극 대응'입니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의 조직으로 법이 규정하는 위법 사항에 대해 단속하고 이를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시즌 기간 야구장 주변부에서 취재한 한국의 경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암표상을 단속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바로 옆에 있어도 잡지 않더군요.
 
과거 송고된 기사(링크)의 사진만 봐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임을 직감할 겁니다. 암표상끼리 싸워도 싸움을 말리기에만 급급하고, 암표를 판다고 대놓고 소리쳐도 잡지 않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야구장까지 수백명의 암표상이 흔하디 흔함에도 경찰은 야구장에 마실나온 것처럼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야구장 분위기를 느끼려고 나왔나 싶더군요.
 
암표상이 벌어들이는 수입액이 얼마인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익이 짭짤함은 분명한 듯 합니다. 안정적 암표판매를 위해서인지 건장한 남성을 고용했고 취재를 하던 저를 급습해 카메라를 뺏으려 하더군요.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이 안정적으로 불법을 이어가기 위해서 폭력배를 동원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개최된 '경찰의 날' 행사에서 "사회의 기강을 흔들고 안전을 저해하는 불법과 무질서에는 원칙을 갖고 엄정하게 대응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대통령 축사에 뒤이어서 청장님은 "경찰다운 경찰이 돼 달라는 국민들의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범죄와 불법에는 추상같으면서도 소외된 이웃에게는 가족 같은 경찰, 자신의 안위보다 정의에 헌신하는 당당하고 깨끗하며 공정한 경찰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암표상 취재를 하면서 접한 경찰은 청장님 말씀과는 거리가 멀더군요. 21일 청장님의 말씀 중 "치안은 국민의 행복과 국가 경쟁력의 기본 자산"이란 부분이 떠오릅니다.
 
잠실야구장에서 산책하듯 다니던 경찰들을 보면서 저는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가 '지하경제를 제도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하경제를 인정하고 장려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 정부의 '창조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경찰은 이런 형태로 실천하나 궁금했습니다.
 
청장님. 오늘의 제가 청장님에게 이런 편지를 전달하는 것은 청장님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래도 아직 취임한지 한 해가 안 되신 청장님이 민생에 가장 가까운 이런 암표 문제를 잘 해결할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잠실야구장 바로 인근인 서울 수서경찰서 서장도 역임하셨기에 재임기간중에 접하던 이야기도 있을 것입니다.
 
야구계는 물론 스포츠계 전체의 불미스런 '손톱 및 가시' 암표상의 문제에 경찰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야구장을 '무법천지'로 놔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수백여 명의 경찰이 왔지만 모두 손놓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적극적 치안 활동이 필요합니다.
 
경찰은 현재 수사권 독립을 위해서 여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범죄를 잡지 않고 묵인하는 경찰에게 어떤 국민이 수사권 독립을 긍정적으로 바라볼지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청장님이 이제라도 이런 현실을 알게 됐으니 적극 해결하실 것이라 봅니다. 적어도 경찰관이 보고도 묵인하는 상황은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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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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