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국가정보원과 경찰에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 및 국가보훈처까지 새누리당 정권의 국가기관들이 지난 대선에서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나오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있는 눈치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16일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담에서 "격앙"된 상태로 "제가 댓글 때문에 대통령 됐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대선 불복이 아니라는 게 민주당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며 대선 결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만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민주당 등 야권의 그것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일부 사실로 확인됐으며 계속해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의 본질은 지난 대선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을 대선 결과와 연관 지을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도 박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원 개혁,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절차적 정의'의 문제로 귀착된다.
국정원의 댓글과 트위터 활동, 대선 사흘 전 나온 경찰의 거짓 브리핑이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김한길 대표의 말처럼 "모르는 일"이다. "그걸 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대선 불복론'을 휘두르는 것은 국가기관의 개입 행위가 결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정국을 마비시킬 수 있는 '대선 불복 카드'를 민주당이 쉽게 꺼낼 수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야권 일각에서 대선 결과에 의문을 표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선거 절차에 심각한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박 대통령이 간과하고 있는 '과정'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야권은 국가기관의 불법 자행으로 지난 대선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는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결과만 얘기하는, 마치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바라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실로 하나마나한 말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대로 부정선거가 되고 만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여야의 인식차로 정국의 대치가 길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침묵을 지키다 동문서답을 되풀이하는 것은 자신의 약속이었던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