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 청구안이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현재 서유럽 순방 중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안이 통과되지마자 정치권엔 정부발(發) 태풍이 휘몰아쳤다.
전날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이 일부 트위터 글을 작성했다는 것과 '댓글녀' 김모씨의 민간조력자에게 3천여만원을 국정원이 지급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 또한 묻혀 버렸다.
박 대통령이 한국을 떠나있는 사이, 또 다른 정치권의 폭풍은 박 대통령과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검찰소환이었다.
문 의원은 박 대통령이 유럽으로 출국한 당일인 지난 2일 검찰로부터 소환통보를 받았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의원의 검찰 소환 통보 소식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시기의 문제가 너무 공작적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이 해외로 나간 시점에 정국에 대형 이슈가 터져 소용돌이가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선 9월 박 대통령이 G20 참석차 러시아와 베트남을 연이어 방문했을 당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보도가 박 대통령 출국 이틀 뒤 한 언론을 통해 터져나왔다.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됐지만, 민감한 개인정보 등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로 채 전 총장을 불만을 가진 세력이 관여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채 전 총장이 부인하고 해당 언론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지만, 황교안 법무장관은 사상초유의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지시로 채 전 총장의 사의를 이끌어냈다.
또 공교롭게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위한 법무부의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TF'도 박 대통령의 러시아 순방 당시 구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3일 프랑스 오르세 박물관을 방문해 작품을 관람했다.(사진=청와대)
국가정보원에 이어 국가보훈처, 국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야당이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와중에 정홍원 국무총리는 대통령 대신 나서서 지난달 28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 담화에서 정 총리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도움 받은 것 없다'·'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자'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민감하거나 불리한 현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통치술'의 하이라이트는 '사과'였다.
지난 3월 연이은 공직 후보자들의 낙마와 부실검증이 논란이 되자,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은 김행 대변인을 통해 '인사위원장'으로서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시기상으로도 토요일 오전으로 언론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 후 5월 '윤창중 성추행 파문'에서도 청와대의 이같은 행태는 또 한번 반복됐다. 사건 직후 윤 전 대변인의 직속상관이던 이남기 당시 홍보수석은 10일 밤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하는 이상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장 야당에서 "사과의 주체가 돼야 할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과성명"이라는 비난이 뒤따랐다.
이틀 뒤 이번에는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이 나섰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심히 마음 상하신 점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은 줄지 않았다.
결국 다음날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그러나 국민들과의 직접 대면이 아닌 참모들과의 회의석상에서였다.
박 대통령은 13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이런 박 대통령의 '대리정치' 행태는 결국 대통령의 '불통'에서 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5일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일방통행인 '통치'에는 무척 능한 분"이라며 "그런데 정치는 쌍방이다"고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은 또 "강력한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데서 오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고 융합하고 화합하면서 나오는 상황에서 훨씬 더 강하다"고 일침을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