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높은 실업률과 국가부채 문제로 유로존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물가 상승률이 저조한 가운데 유로화마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하 등의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로존의 맏형인 독일이 역내 경기회복을 위해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내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독일 책임론' 또한 재부각됐다.
◇유로존 내년 성장률 1.2%→1.1% ‘하락’..실업·부채 문제 탓
5일(현지시간)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2013 가을 유럽 경제 전망’ 보고서를 내고 유로존의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종전의 1.2%에서 1.1%로 낮춰 잡았다. 올해 성장률은 마이너스(-)0.4%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가별로는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내년 성장률 예상치가 종전의 1.8%에서 1.7%로 내려갔고, 2위 국인 프랑스는 지난 5월에 집계된 전망치 1.1%에서 0.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유로존 경제 4위 국인 스페인은 0.9%에서 0.5%로 하락했고 아일랜드는 2.2%에서 1.7%로 내려갔다.
다만, 포르투갈은 0.6%에서 0.8%로 오히려 상향 조정됐고 그리스(0.6%)와 이탈리아(0.7%)는 올 봄에 추정된 성장률 예상치를 각각 이어갔다.
올리 렌 EU 경제·통화 담당 집행위원은 "그간 재정 안정화와 구조개혁 노력을 통해 경제회복의 기반이 마련됐으나 승리를 언급하기는 이르다"며 "실업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상황이라 유럽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업률 전망치는 이전보다 후퇴했다. EC는 유로존의 내년 성장률을 12.2%로 종전 전망치인 12.1%에서 0.1% 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사상 최대치인 12%대 실업률은 오는 2014년까지 계속 이어지다 2015년에 들어서야 11.8%로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다.
(자료제공=CNNMoney)
산적한 부채 또한 유로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EC는 내년 프랑스의 국가 채무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3.7%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연합(EU)의 재정안정 기준인 GDP 대비 3% 선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EU는 올 중순 경 적자 규모를 3% 이하로 줄이는 것을 조건으로 프랑스 등 부채국을 대상으로 감축 시한을 2년 더 연장해 준 바 있다.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6.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EU 기준치의 두 배가 넘는 수치며, 스페인 정부의 단기 목표치인 4.1%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와 스페인 정부가 부채 감축 압박에 시달릴 것이며 이는 자국 내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둔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로화 강세·저조한 인플레이션..유로존 회복 악재
여기에 유로화 강세와 저조한 인플레이션 악재가 겹치면서 유로존 경기침체(디플레이션) 우려감마저 감돌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발표된 유로존의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0.7%로 전월의 1.1%에서 크게 하락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ECB가 물가 안정목표치로 설정한 2%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로 전문가 예상치인 1.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더불어 EC 보고서는 인플레이션율이 내년 1.5%, 2015년 1.4%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채 위기국의 긴축과 주요국 경기둔화 여파로 꽁꽁언 소비심리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유로화 강세도 유럽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유로화 가치가 상승하면 유로존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경상수지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유로·달러 환율은 지난주 2년 만에 최고치인 유로당 1.38달러로 치솟은 바 있다. 그 이후로 상승세는 꺾였으나,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지난 5개월 동안 5%나 올랐다.
파브리지오 사코마니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전일 "유로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통화로 위안화, 파운드화, 스위스 프랑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며, "유로화 강세로 유럽경제 회복세가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존 구원투수..유럽중앙은행(ECB) · 유로존 맏형 독일
이처럼 유로화 강세와 저조한 인플레, 부채 문제 등이 어우러져 유로존 경제 전망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율이 너무 낮아 유로존에서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를 올릴만한 결정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부채 감축 압박을 받고 있는 프랑스 정부도 ECB가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아르노 몽트브르 프랑스 산업장관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미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가 너무 높아졌다”며 “ECB는 금리 수준을 현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ECB가 오는 7일 통화정책회의나 다음 달 회의 때 현행 기준금리인 0.5%를 인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Fed)나 영국 영란은행(BOE)이 시행하는 자산매입 카드를 꺼내 들기에는 독일의 반대가 너무 심하여서 금리 인하가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카드라는 판단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인플레이션을 높일만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등의 발언으로 시장을 안정시킨 뒤 서서히 경기부양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금리 인하 카드를 너무 일찍 써버렸다가 효과가 없으면 마땅히 시장에 자신감을 줄만한 도구가 없기 때문에 ECB가 경기부양책을 서서히 진행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12월에 발표되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확인한 이후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 또한 반영한 것이다.
홀거 슈미딩 베린베르크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드라기의 발언으로 당분간 인플레 우려가 가실 확률이 높다"며 "다만, 그 영향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내수 확장이 유로존 경기침체에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라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이 EC로부터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변경하라는 외부의 압박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회원국 내 수출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독일이 유로존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된 것이다.
실제로 EC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올해와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는 6%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유로존 창설 이후 최대규모다.
올리 렌 위원은 "꽉막힌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 독일은 임금을 꾸준히 인상하고 특별히 저소득층에 세금 인하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도 내수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 재무부 또한 독일이 너무 수출 중심주의를 탈피하고 내수를 확대해야 유로존과 세계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