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이 흘렀습니다. 5년이 지났지만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하락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힘없이 터벅터벅.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좀비의 걸음으로 조금씩 밑으로, 또 밑으로 기어내려 가고 있습니다.
금융위기에 죽었어야 할 시장이 좀비처럼 죽지 않고 살아 돌아다니며 고통의 시간만 늘려주고 있습니다. 어떤 중개업자는 "아주 오랫동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고통스럽게 목만 조르고 있는 것 같다"고 현재 기분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부동산시장이 좀비가 된 시점은 2009년. 당시 비정상적인 상승과 지친 부동산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비수에 꽂혀 죽었어야 하지만 시장은 죽음을 거부하고 눈을 떴습니다.
2008년 8월에서 12월까지는 1.3% 떨어지며 이전까지의 호황을 마무리하고 외부의 경제 충격과 함께 조정기에 들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주택 소유주로서 받아드리기 쉽지 않지만 사이클상 하락 국면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는데요. 물론 시간이 지나고 결과론적인 얘기입니다.
하지만 2009년 시장은 예상을 깨고 상승세를 탑니다. 전국 1.6%, 서울 2.6%, 강남3구는 5.5%가 상승합니다. 지방은 대체적으로 조정에 들어갔지만 수도권은 깜짝 상승세를 보입니다.
부동산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정부의 부동산대책도 나왔지만 결국 시장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몫. 부동산 소비자들은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며 주택 매수에 나선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내몰렸고, 부동산시장은 폭락했습니다.
1998년 1년 동안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13.6%가 떨어졌습니다. 서울은 -14.6%로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986년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이 집값 조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도 유래없는 하락폭입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과 직장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넘치고, 대출이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던 시기.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었던 부동산은 짐이 됐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매가 성행하던 시기. 시장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숨을 멎는 듯했던 부동산시장이 이후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1998년 저점을 확인한 후 1999년 전국 아파트값은 8.5% 올랐습니다. 2000년 1.4%로 숨고르기를 한 부동산시장은 본격적인 비상을 시작합니다. 2001년 14.5%, 2002년 22.8%, 2003년 9.6%. 2002년 한해에만 서울 한강 이남의 아파트는 35.2% 폭등했습니다.
IMF 붕괴 후 이같이 눈부신 재건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한 소비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을 낙관한 것이었죠. 학습효과입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2010년 -2.2%, 2011년 -0.4%, 2012년 -4.5%, 2013년 10월까지 -1.8%. 4년 연속 하락. 죽음을 거부하고 생명 연장을 선택한 것에 대한 희생의 값입니다.
2009년 주택 매수에 들어간 많은 사람들을 지금은 하우스푸어라고 부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삶과 죽음은 계속해 순환됩니다. 2009년 흐름을 역행했던 부동산시장은 벌써 5년째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존재, 좀비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