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이제 금융투자업계의 해외진출은 당연한 수순이 됐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장기적 생존을 위한 업계의 해외진출 등 미래 먹거리 창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면 과제가 됐다.
금융투자업계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업계가 해마다 연초에 '해외시장 진출'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기존의 해외진출 전략을 재정비해 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그간의 실적은 꺼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다. 해외에 진출한 금융투자업계의 해외자산 운영 비중이나 현지화 정도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해외진출 역사 32년..여전히 '걸음마 단계'
국내 자본시장 해외진출 역사의 출발점은 3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1월 정부의 증권시장 국제화 추진계획이 발표되면서 국내외 증권사들의 상대 국가에 대한 진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보다 앞서 1980년 외국 증권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노무라증권이 서울사무소를 개설한 바 있다. 이후 1982년 일본 야마이치증권과 다이와증권, 1983년 일본 닛코증권, 1985년 미국 메릴린치증권 등이 잇따라 서울사무소를 열었다.
국내 증권사의 해외진출은 1984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대우·대신·동서·럭키·쌍용투자증권 등 5개 대형사를 필두로 일본 도쿄에 사무실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뉴욕과 런던으로 진출 영역이 확장됐다. 대우·대신·럭키·쌍용투자증권 등 4개사가 뉴욕에, 동서증권은 런던에 각각 사무소를 개설했다.
◇1992년 설립된 KDB대우증권 미국 뉴욕 현지법인. 현재 직원수는 10명에 불과하다.(사진제공=KDB대우증권)
하지만 활발한 해외 진출에 비해 초기 성과는 많지 않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시 해외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 사무소는 외국인전용 수익증권 판매를 통해 국제 금융시장에 한국을 알리는 데 힘쓰던 단계였다"고 말했다.
인력이나 현지 정보취득의 한계로 실제 비즈니스보다는 연락 사무소의 개념이 컸다는 설명이다. 다만 해외사무소 운용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에 앞서 선진금융기법을 체득할 기회는 얻을 수 있었다.
◇지난 1991년 KDB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개업식 모습. (사진제공=KDB대우증권)
이후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는 자본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는 동시에 외국자본 유입도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의지로 자본자유화와 개방화가 빠르게 추진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또한 금융투자업계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해외진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인 계기가 됐다. 자본시장법 시행을 앞두고 미리 대비하자는 차원에서였다. 그 결과 2008년 6월 당시 국내 증권사의 해외거점은 현지법인 27개, 지점 1개, 사무소 23개 등 총 51개로 확대됐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선진국에 집중 진출하던 국내 증권사들이 베트남 호치민이나 카자흐스탄 알마티,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등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진출 반경을 넓힌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해외점포 수익성 한계..글로벌 경쟁력 갖춘 한국형 IB '절실'
올해 3월 말 현재 국내 금융투자회사 가운데 19개 증권회사가 87개, 14개 자산운용사가 25개의 해외점포를 각각 운영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저조한 실정이다.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해외진출 현황('13.3월말 기준) (자료정리=뉴스토마토)
증권회사 해외점포의 지난해 회계연도 상반기 당기손실액은 1340만달러로 2011년 9080만달러 손실에 이어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국내 19개 증권사의 해외점포 87곳이 지난 2012 사업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낸 총 손실규모다.
2010년 이후 3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외 진출 14개 지역 중 11개 지역에서 손실을 기록했다.
(자료제공=금융감독원)
평균자기자본은 1380만달러(약 150억원)로 규모도 영세하다. 진출 지역은 중국과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 편중돼 있는 상황이다.
해외 투자은행(IB)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하기에는 자본력이나 네트워크 등의 측면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지난달 30일 한국형 IB가 공식 출범하면서 이들이 당초 의도대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성장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제 관련 '열쇠'를 쥔 정부의 지원 강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현지 법인 설립 또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나 외환포지션 규제 등이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KDB대우증권 글로벌 지점망. (자료제공=KDB대우증권)
전문가들은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계적인 해외 진출에는 최소 5~6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실패사례도 많이 나오는 등 자본손실도 큰 폭으로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개별 회사들에 맞는 적절한 진출 전략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금융사의 해외진출 규제를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혀 업계가 반기는 분위기다. 금융위는 현재 금융투자업계를 비롯한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내용을 담은 '텐텐(10·10) 밸류업 금융비전'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금투협은 지난 2008년 개설한 이머징마켓지원센터를 통해 회원사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국내 증권사의 해외진출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대형사는 물론 중소형사들도 각국의 틈새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