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A씨는 얼마전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한없이 큰 부정(父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고인은 오랜 암 투병 속에서도 스스로 떠날 길을 하나 하나 준비해놨기 때문이다.
장례형식부터 수의, 조화까지 미리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하셨던 것. 장례식장 측에서 고인에게 이 정도는 해야한다며 비싼 물품들을 권하기도 했지만, 고인에 의사에 따라 간소하게 준비했다. 화장장 등의 시설이나 물품 준비는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을 통해 가격 비교 후 예약할 수 있었다.
장례는 고인을 보내는 엄숙한 의식이다. 하지만 핵가족화·산업화가 가속되면서 장례가 상업화 됐고, 장례문화 전반에도 허례허식이 가득차게 됐다. 전문가들은 '성찰 없는 장례'를 비판하며, 사회적 자원을 과도하게 낭비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구고령화..장례비 눈덩이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평균사망자 수는 25만 명으로 추산된다. 2년 후면 30만 명, 오는 2035년에 50만 명, 2055년이면 75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 앞으로 40년간 무려 1900만 명이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망자 수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고령화 사회로 치닫으며 사망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특히 현재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생) 세대가 사망할 시점이 되면 사망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진숙 골든에이지포럼 사무총장은 "현재의 장례문화를 지속할 경우 경제적 부담이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며 "지금부터 장례를 간소화 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급 장례가 孝?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장례를 고급으로 준비해 드리는 것이 부모에게 효(孝)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다. 자식된 도리로 부모의 가는 길에 차마 가격이 저렴한 수의나, 관을 해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골든에이지포럼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러한 장례문화 개혁을 위해 나눔국민운동본부·건전가정의례실천협의회·마음건강연구소·생사의례문화연구원 등 4개 단체와 함께 ‘사전장례의향서 쓰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사전장례의향서'는 작성자가 자신의 장례 형태를 미리 결정함으로써 유족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자식들이 '효'에 대한 강박관념때문에 고가의 장례를 치르지 않도록 염습·수의·관 선택, 화장·매장 여부, 부의금·조화를 받을지 등을 장례 전반에 관련된 내용을 미리 적어둔다. 유족들은 고인의 의사에 따라 혼란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최 사무총장은 "현재 지나치게 상업화 된 장례문화를 바로잡고, 국가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같은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범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교수는 "사전 장례의향서는 자신의 죽음의 방법을 자신이 직접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성찰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웰다잉 지원해야
전문가들은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웰다잉에 대한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의대 암연구소 윤영호 교수팀이 지난해 전국 만 20~6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웰다잉에 대한 설문조사를 결과 응답자의 70.9%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 마련 등 국가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도 두 팔을 걷어부쳤다. 복지부는 지난 5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을 출범시켜 올바른 장례문화 홍보, 화장장 예약, 장례물품 예약 등의 서비스를 지원 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을(www.ehaneul.go.kr) 운영한다.
서종원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사무관은 "이 사이트를 열기 전에는 상조회사에서 화장장을 대규모로 선점하는 등의 행위로 일반인들의 피해가 많았지만 이제는 인터넷 창구를 통해 가격을 비교한 뒤 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장례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웰다잉을 위한 교육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서 서무관은 "웰다잉 교육에 관해서는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긴한데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웰다잉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어르신들이 나이가 드시면서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가다보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점점 커져 정상적인 생활을 크게 방해한다"며 "죽음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통해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 남은 생활을 더 알차게 보낼 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진=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홈페이지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