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놀아야 잘산다)술 독에 빠진 베이비부머

[기획]베이비부머의 위험한 여가
①놀 줄 몰라 못 논다

입력 : 2013-12-18 오전 9:03:19
[뉴스토마토 양예빈기자] '한강의 기적'을 산업역군인 베이비부머(1955년~1963년생) 세대들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일에만 파묻혀 살다보니 은퇴 이후에 주어진 여유시간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여가를 어떻게 즐겨야 할 지 모른다. 뉴스토마토 은퇴전략연구소는 제대로 즐겨본 적 없어서 놀 줄 모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여가문화 실태와 이에 따른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A씨(54세)는 오늘도 직장동료들을 모아 놓고 술을 마신다. 간단하게 저녁만 먹자고 했던 자리는 어느새 4차까지 이어진다. 폭탄주는 기본이다. 얼마 전 병원에서 몸이 많이 상했다는 통보를 받긴 했지만, 술을 줄이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젊은 시절부터 일과 술에만 매달린 탓에 자녀들과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는 것은 술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유시간이 생겨도 솔직히 이제는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뭘하고 놀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친목모임 외 여가활동 거의 안해
 
베이비부머는 대표적인 놀 줄 모르는 세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도시지역 50대 장년층의 여가생활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1955~1963년에 출생한 도시지역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적극적인 여가 활동을 거의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 달에 한 두 번의 여가 활동도 종교모임(49.7%), 동창회나 계모임(34.5%) 같은 친목모임에 한정돼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주역이며,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스란히 견뎌온 세대다. 하지만 이들은 과도한 노동시간 때문에 자녀들과 멀어진 데다 여가를 즐겨본 경험 자체가 적다. TV시청이나 술을 먹는 것 외에 다른 여가를 즐기는데 익숙하지 않다.
 
정 모씨(51세)는 "젊은 시절부터 계속 일만 하다보니 뭘 하고 놀아야할지 잘 모르겠다"며 "영화도 뮤지컬도 졸려서 보기 힘들고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과 술마시는게 가장 마음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음주율 가장 높아.."스트레스 술로 풀어"
 
베이비부머의 음주율은 다른 연령대보다 높다. 보건복지부의 지난 2010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남성 음주자 중 고위험 음주자의 비율은 50대(30%), 40대(29.9%), 30대(29.4%), 60대(18.5%) 순이었다. 
 
베이비부머들은 생활의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고 답했다.
 
정 모씨(51세)는 "이제 뭐 별다른 낙도 없는데다 새로 무언가를 배울 열정도 없다"며 "자꾸 마음이 공허해지고 직장에서 압박은 심하니 그냥 술로 마음을 풀게 된다"고 말했다.
 
김 모씨(52세)는 "회식도 자주하고 사업 차 접대겸 룸살롱에도 자주 간다"며 "젊을 때는 타의로 끌려갔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약간 즐기는 면도 있고 그렇게 놀다보면 술 먹는 거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이제는 술마시는게 습관이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홍 모씨(53세)는 "딱히 뭐 별일이 있어서 마시는 건 아니고 그냥 생각나면 마신다"며 "술마시는데 별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
 
◇고혈압·암 환자 5년새 2배 급증
 
이러한 과도한 음주는 질병과 직결된다. 빅데이터 국가전략포럼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혈압 환자는 139만6266명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06년 56만6670명에서 2.5배 늘어난 수치다. 암에 걸린 베이비부머도 지난 2006년 10만3053명에서 2011년 25만1047명으로 2.4배로 늘었다.
 
양 모씨(56세)는 "일 끝나고 한 두잔씩 마시다 보니 몸이 다 망가졌다"며 "과도한 음주 때문에 위암에 걸려서 위절제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음주가 암·고혈압 등 각종 질병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주대 병원 관계자는 "지나친 음주는 동맥경화를 일으켜 혈관이 좁아지고 이에 따라 고혈압을 악화시킨다"며 "또 간암·대장암 등 각종 암을 유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주가 야기하는 사회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생활습관병연구센터 연구위원은 "가정폭력, 음주운전 등 심각한 사회 문제들도 음주와 관련되어 있다"며 "음주는 개인적인 건강 악화 뿐만 아니라 막대한 사회적인 비용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나이가 있는 만큼 여러가지 만성질환의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절주 혹은 단주가 필요하다"며 "성인 남자의 경우 1일 4잔 정도를 저위험 음주라고 보고 있지만 이 또한 매일 마시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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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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