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스토리)당신은 내년부터 잠재적 탈세자입니다

입력 : 2013-12-10 오전 9:43:4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누군가가 자신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만큼 기분나쁜일도 없습니다.
 
최근 보육교사들이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 설치의무화 방침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도, 이런 불만이 반영된 행동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CCTV설치 자체가 모든 보육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수 없게 하기 때문이죠.
 
필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는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이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혹시나 내가 놀고 있을까봐 내 책상 앞에 CCTV를 설치해두고 있다면 열심히 일을 하다가도 기분 나빠서 회사를 관두고 싶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심각한 문제가 대한민국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벌어졌습니다.
 
바로 우리 정부가 모든 국민들을 잠재적인 탈세자로 몰고 있는 것인데요.
 
"내가 잠재적인 탈세자라고?" 하고 놀라실 수 있겠지만 사실입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이른바 '노력세수' 4조7000억원을 반영했는데요. 이 '노력세수'라는 것이 국민들을 잠재적인 탈세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세수'는 세금을 "걷으면 걷힌다"는 아주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력하는 만큼 세금을 거둘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정부는 세목별로도 아주 다양하게 노력해서 더 걷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부가가치세 1조3500억원, 법인세 1조3300억원, 관세 8200억원, 종합소득세 5700억원, 양도소득세 1500억원, 상속세 1500억원, 증여세 1000억원, 교통에너지환경세 500억원 등이 포함됐습니다.
 
거의 모든 세목에서 노력을 더하겠다는 것인데요. 특히 대부분을 세무조사 등 행정력 강화를 통해 걷겠다고 밝혔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세우긴 했지만, 상당수 국민들이 탈세를 하고 있고, 그 때문에 세무조사 등 어느 정도 노력을 하면 이 수준의 세수를 거둘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사실 '노력세수'는 합리적인 추계가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은 정부가 예산안을 짤 때에도 세수입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에는 통상적인 세수추계식에 따른 추계치와 해마다 실시하는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효과를 더해 세입예산을 산출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이런 불확실한 세수입까지 쥐어 짜내어 세입예산에 반영한 것입니다.
 
그만큼 세입여건이 어렵긴 한가봅니다.
 
국세청이 올해 10월까지 집계한 세수입은 167조1577억원으로 목표한 세수입보다 약 32조원이 모자랍니다. 남은 11월과 12월의 세수입을 통해 이를 채워야만 국가재정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내년에는 세입여건이 더 어렵다고합니다.
 
그런데 노력세수라는 불확실한 세수입을 내년 예산에 포함시켰으니 내년 연말에 가면 올해보다 더 큰 구멍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뜬구름잡는 금액까지 세입에 포함했을까 싶지만, 사실 노력세수의 세입예산 포함은 세입에 구멍이 생기는 문제를 넘어서 '납세자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부는 1997년 '납세자권리헌장'을 제정하고 납세자의 권리에 대한 모든 내용을 기록했는데요. 아울러 국세기본법에는 국세청장에게 이 헌장의 제정 및 교부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납세자권리헌장의 그 첫번째 항목이 바로 "납세자는 납세협력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구체적인 조세탈루혐의 등이 없는 한 '성실'하며, 납세자가 제출한 세무자료는 '진실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납세자의 신고내용은 진실한것으로 추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노력세수는 그 자체로도 납세자의 신고내용이 불성실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세금은 세법에 의해서 걷는 것이기 때문에 노력해서 추가로 걷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한다고 엄청난 소란을 피우고 있지만, 세무조사를 통해 걷는 세금이 전체 세수입의 1% 안팎에 불과한 점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세금을 더 걷으려면 세법을 바꿔서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하는 것이죠. 국세청이 노력한다고 해서 더 걷힌다면 헌법이 규정한 조세법률주의에도 위배됩니다.
 
정부가 노력하는만큼 거둬들일수 있다면 또 다른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동안 노력을 안하고 뭐했냐는 문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하려면 세금이 많이 부족할겁니다. 그동안 하지못한 노력을 한꺼번에 하느라 탈이나 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국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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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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