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망령, 다시 살아나나.’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넘어서는 등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짐에 따라 키코를 통해 환헤지를 했던 기업들이 또 한 번 후폭풍을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수출·입을 하는 회사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맺은 통화옵션거래를 칭하는 키코는 지난해 환율이 한때 1달러당 1500원까지 급등함에 따라 일부 기업을 파산까지 내모는 등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1200원대까지 하락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던 환율이 다시 1400원대를 넘어서면서 키코로 인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 키코로 파생상품거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한 기업만도 현대디지탈테크, 티에스엠텍, 재영솔루텍, 디엠에스, 우주일렉트로닉스, 씨모텍, 케이엠더블유, KJ프리텍, 코덱, 탑엔지니어링, 현진소재 등 11개 업체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회사의 공시 내용은 지난해 4·4분기를 거치면서 실제 발생한 거래손실과 향후 키코 계약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평가손실을 표시한 것으로 기준시점(지난해 12월 30일) 당시의 환율 1368.50원보다 현재 환율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기업 대부분은 지난해 초 키코 계약을 맺을 당시 시장 전망과 금융기관 권고 등에 따라 약정환율을 900원대 초반으로 설정해 놓은 상태여서 계약 만료기간 전에 약정환율 수준까지 환율이 내려가지 않으면 확정손실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각 금융기관과 맺은 약정환율은 우주일렉트로닉스의 경우 우리은행과 931.6원과 921.3원, 산업은행과 955원, 티에스엠텍은 한국씨티은행과 각각 939원, 934원, 985원, 946원, 1015.6원 그리고 재영솔루텍은 신한은행과 각각 930.87원, 915원, 하나은행 936.42원, 우리은행 929.7원 등에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과 키코 계약을 한 제조업체 기획실 관계자는 “환헤지를 하려고 체결했던 키코가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환헤지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키코로 인한 손실이 불어날 조짐을 보이자 지난해 불거졌던 계약 당사자 간 법정 싸움도 재현되고 있다.
씨모텍의 경우 키코 계약을 맺은 신한은행과 산업은행에 대해 지난 1월 22일과 이달 12일에 키코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그동안 키코로 입은 손실금을 돌려받는 본안소송을 법원에 각각 제기한 상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계약 당시 금융기관들은 환율이 상승할 경우 회사에 어떤 위험이 되돌아올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는 등 부당한 계약을 체결했고 이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추가손실을 막고 은행측에 이미 지급한 손실금을 반환해 달라는 취지에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환헤지를 효과적으로 할 줄 알았던 키코에 덜미를 잡히자 향후 환헤지를 어떻게 할지 고민에 휩싸인 모습이다.
또 다른 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단순 선물거래도 아니고 키코와 같이 통제 불능한 위험 요소가 숨어 있는 상품에 추가로 가입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이 때문에 회사에서도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환헤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뉴스]